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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당신들을 위한 잔치'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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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해가 저물어 가며 정치개혁도 물 건너가고 있다. 작금의 선거제도 개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국민을 어지럽고 헷갈리게 만든다. 일언이 폐지하고, 정치권은 왜 지금 선거제도를 바꾸고자 하는지 묻고 싶다.

하고많은 날들을 허송하고 있다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선거구제 운운하며 개혁의 제스처를 연출하는 것은 보기 민망하다. 지금 있는 선거제도로도 얼마든지 공명하고 깨끗하고 돈 안드는 선거를 할 수 있다.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개악하지 말고, 개혁할 마음이 있거든 내년 4월 선거가 끝난 후 당리당략을 떠나 거국적으로 다시 만나기 바란다.

개혁을 미루자는 것이 아니다. 개혁을 빙자한 정쟁(政爭)들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선거구제 논쟁을 보자. 여당은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를 들고 나왔다. 논리는 약하지만 지역성 타파를 위한 진심을 무시할 수 없기에 논의는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복합선거구제는 무엇인가? 여기에 이르러서 그 정략적 냄새를 못 맡을 위인은 없다.

선거구제도에도 역사가 있다. 한때의 편의를 위해 가벼이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는 민주화투쟁의 값진 소산이다.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바와 같이 소선거구제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 회복됐다.

유신체제와 5공이 채택한 중선거구제는 여당의 지지기반이 취약한 지역구에서 여당후보를 동반 당선시키는데 주효했으며, 유정회 등의 전국구제도와 더불어 권위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압력으로 인해 소선거구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뼈아픈 여소야대를 감수해야 했으며 현정부의 출범은 그 연장선상에서 가능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선거구제가 전국정당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분석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다른 지역에서 몇명 더 당선시킨다고 해서 전국정당이 됐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당의 후보자끼리 경쟁시키기 때문에 정책이나 정당중심의 경쟁보다는 인물중심의 경쟁을 조장하고 오히려 정당을 와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정당명부제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정당의 득표율을 정확하게 의석에 반영하고자 고안된 제도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지역구 선거결과와 관계짓지 않고 권역별로 정당명부제를 실시하면 지역응집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비호남지역에서 얻은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데 유리하게 된다.

단 전국구의원의 수가 많아져야 그 효과가 있다. 이렇게 된다면 원래 목표했던 만큼의 비례성이 확보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현재의 전국구 공천관행을 그대로 둔 채 전국구의원의 숫자만 늘린다면 정당의 보스에게 힘만 더 실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역구와 전국구에 중복 출마까지 허용한다면 당의 보스들에게는 금상첨화라 아니 할 수 없다.

소위 선거제도 개혁의 민주화 명분이 이렇게 취약한데 그 후속 논의는 얼마나 의미가 있겠으며, 의원 정수 축소, 지역구 의석 축소, 지역구 조정 등 정당간. 개인간 이해득실이 난마같이 얽힐 수밖에 없는 문제를 그렇게 촉박한 스케줄을 가지고 무리없이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일괄타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국민을 위한 것이기보다 '당신들을 위한 잔치' 일 가능성이 크다.

개혁을 한다며 하필이면 그나마 제도화의 정도가 높은 선거구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가 사면초가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경 제 닭 잡는 격으로 부도난 회사에서 감원하듯 해야 체면이 서는 것인가□ 비록 정치가 불신받고 있지만 체질을 바꿀 수 있도록 철저하게 개혁할 일이지 국회의원 몇명 줄인다고 정치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민의 참여와 조직, 그리고 사회의 다원성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비록 국회의 자율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국회의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현재로서는 투표와 정책결정 사이에서 시민과의 중요한 접합점은 그래도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문제라기보다 국회가 맥을 못출 정도로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정치권력이 문제다. 정치개혁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논의돼야 하는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그런 생각 하는 사람은 없다. 건드릴수록 개악될 것이니 손대지 말 일이다.

조중무 국민대학교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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