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99 북한] 남북교류 '햇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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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은 올해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기반 붕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한해를 보냈다.북한의 한해를 돌아보면 ‘강성대국’슬로건과 ‘제2천리마대진군’이라는 대중동원운동을 통해 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음을 확인할 수 있다.북한이 경제난의 깊은 수렁을 얼마나 극복했는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마이너스성장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는 또 서해교전사태와 금강산관광으로 남북관계의 명암이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교류·협력 분위기가 높아져 그 어느 때보다 방북자가 많았다.또 대북 물자·자금이동도 예년에 비해 늘었다.이는 김대중정부의 대북포용정책 기조아래 민간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편집자]

올해는 인적 왕래의 증가 현상이 뚜렷했다.95년 5백39명,96년 1백46명,97년 1천15명에 비해 98년과 99년에 3천3백17명,5천1백92명(11월말,이하 같음)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1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래 올 11월말까지 관광객 숫자는 14만6천1백48명을 기록했다.월평균 약 1만2천6백명이었다.

북한 이탈주민의 입국숫자도 증가세였다.95년 41명,96년 56명,97년 85명에서 98년에 71명으로 조금 줄었다가 올해 1백27명으로 늘어났다.

이산가족 교류는 생사확인의 경우 95년 1백4명,96년 96명,97년 1백64명이었던데 비해 98년과 99년에 각각 3백77명과 4백61명으로 뚜렷한 증가를 보였다.제3국 상봉 역시 95년 17명,96년 18명,97년 61명에서 98년 1백8명과 99년 1백81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89년 약 1천8백만달러 규모로 시작된 남북교역은 95년 2억달러,97년 3억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98년에 외환위기로 인한 국내경기 침체로 2억달러대로 떨어졌으나 올해 다시 3억달러대로 회복되고 있다.교역수지 면에선 반입이 반출보다 많은 교역적자였다.교역업체 및 품목도 증가세를 보였다.

끝으로 99년의 대북지원은 97년과 비슷한 금액으로 나타났다.즉 97년 지원총액은 4천7백23만달러였고 98년과 99년에 각각 3천1백85만달러,4천5백38만달러였다.

신원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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