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천씨 종묘서 새천년맞이 설치미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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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종묘(사적 제1백25호)에서 새 천년을 맞이하는 설치미술전이 열린다.

창건 6백여 년 만에 처음이 될 이 파격적인 현대미술 이벤트의 주인공은 지난 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작가 전수천(52)씨.

최근 재단법인으로 새 출발한 세종문화회관이 큐레이터를 채용하는 등 전시 부문에 역점을 둘 것을 공언하면서 마련한 첫 기획전인 전씨의 '밀레니엄 2000-지혜의 상자' 가 오는 31일 자정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개막식을 가진다.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오는 역사적인 시점입니다. 21세기는 무엇보다 우리 민족에게 지혜가 필요한 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개발하고 응집시켜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두뇌와 판단력 말입니다. "

전씨는 세종문화회관 광장과 종묘에 각각 밀레니엄을 상징하는 1천1개와 2천1개의 알루미늄 상자를 설치할 계획이다.

가로.세로 9.5㎝, 높이 21㎝의 작은 상자들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펼쳐지고 중심 부분에 가로.세로.높이 55㎝의 큰 상자 1개가 세워진다. 투명유리로 만든 큰 상자는 바닥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설치되며 이 아래로 푸른 네온 빛이 통과하게 된다.

" '지혜의 상자' 는 사람의 머리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네온 빛이 비추면서 두뇌가 살아 움직이는 형상을 띄게 되죠. 내재된 가능성이 해체.조립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혜' 라는 결과물을 생산한다는 내용입니다. "

이 곳 정전 앞 석광장에 세워지는 상자 중 붉은색 1천개는 지나간 천년을, 거울처럼 광택이 나는 1천개는 다가올 천년의 이미지를 담게 된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정신적 버팀목이었고 왕조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 이라고 장소의 상징성을 설명한 그는 "조용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종묘에 어울리는 컨셉트는 미니멀리즘이라 생각했다" 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수차례 종묘를 찾아 유구한 역사의 깊이와 무게를 실감하며 작품 구상을 했다는 것. 공동전시장으로 종묘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광장이라는 장소를 택한 것도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서울 시민의 문화적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 상징적 공간이니만큼 그의 이번 설치는 공공미술적 성격도 띠는 셈이다.

그의 이번 프로젝트가 앞으로 이러한 공공 장소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예술 작업의 수를 늘리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혜의 상자' 전은 원래 31일 자정에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종묘에서도 개막식을 열고 새해 첫날 오전 2시까지 일반에게 개방하려고 했으나 관리상의 이유로 무산됐다.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5천만원을 지원받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는 내년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광목천을 두른 기차를 타고 횡단하는 '백의민족' 퍼포먼스를 구상하며 스폰서를 구하고 있다.

전씨는 일본 무사시노(武藏野) 미대를 나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시는 내년 1월30일까지. 02-399-1626~8.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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