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백문제' 정부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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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0년대 들어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태백(太白)지역의 탄광이 속속 문을 닫고 폐광지역 개발지원 특별법이 제정됐을 때만 해도 이 지역 주민들은 꿈에 부풀었다.

관광레저산업 중심의 지역개발계획이 발표되고 이웃 정선(旌善)에 내국인 카지노 건설이 추진되면서 한바탕 땅투기 바람이 이는 등 '새로운 태백' 은 멀지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현지 사정은 그때의 꿈과는 생판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고원관광지 건설을 위한 망치소리 대신 탄식과 분노의 목소리만 높아가고 있다.

태백시민들은 지난 12일에 이어 내일 또다시 정부를 성토하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시의회가 주도하고 시장이 앞장선 집회다.

곳곳에 수천개의 붉은 항의 깃발과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차량마다 검은 리본을 다는 등 태백시 전체에 팽배한 긴장은 과거 '사북사태' 를 연상케 한다.

정부에 대한 이들의 요구는 석탄산업 보호육성책 제시.폐광지역 개발 공공투자 확대 등 9개 사항으로 94년 폐광된 함태탄광의 재개발이 핵심이다.

왜 자치단체가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적지않은 비용을 들여 폐쇄한 탄광을 다시 열라고 요구하는가.

한마디로 정부정책에 따라 1차 사양산업 위주의 지역경제 구조를 레저중심의 3차산업으로 재편하려는 계획의 실행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태백시는 폐광조치에 따라 관광레저와 지역특화 사업 등 21개 분야의 대체산업 육성계획을 마련했으나 수년이 지난 현재 7개 사업의 사업자만 확정됐을 뿐 나머지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한다.

공공투자 계획이 전무하다시피한 데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까지 겹쳐 민자유치가 쉽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다.

산업재편도 하기 전에 경제가 무너져 한때 13만명 이던 인구가 현재 5만7천명으로 줄었고 이대로 가면 도시 자체가 고사한다는 위기감이 태백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폐광을 다시 열라는 태백시민들의 요구는 국가 전체의 에너지정책 차원에서 검토될 문제지만, 사태가 여기에까지 이르도록 중앙정부는 뭘 했는지 이게 정말 답답한 일이다.

물론 지역경제정책에 대한 일차적 권한과 책임은 자치단체에 있지만, 태백시 경우는 석탄산업합리화라는 국가정책이 시발점인 만큼 중앙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자체가 그동안 숱한 탄원과 호소를 했지만 중앙정부는 나 몰라라 했으니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동안 산업자원부와 행자부는 뭘 했단 말인가.

또 정당은 어땠는가.

이제라도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장 관련부처들로 실사단을 구성해 실태와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태백시민들에게도 당부코자 한다.

행여 감정이 앞서 다중집회의 성격이 변질될까 우려된다.

질서는 지키면서 평화적으로 요구하고 대화를 통해 태백시를 회생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국민들이 태백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시민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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