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키워드] 18. 인공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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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간지성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정해진 하나의 과업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지성은 참으로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다.

추론을 하고, 사물을 식별하며, 순발력 있게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의 지성이란 물질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 으로 이뤄졌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컴퓨터는 이런 통념을 뒤엎어 버렸다.

물질로 만들어진 것들이 '생각' 하고 '판단'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는 컴퓨터에 지능을 부여해 보려는 공학적 기획이 입안됐다.

그때까지 고성능 계산기로만 사용되던 컴퓨터에 인간의 지적 능력도 대행할 수 있게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래 컴퓨터는 놀랍게 변신했으며, 오늘날에는 인간보다 체스를 잘 두기도 하고, 인간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대화하기도 하며, 어떤 분야에서는 의사보다 더 신빙성 있는 진단을 내리는 판단능력을 갖출 정도가 됐다.

이런 일들은 모두 하나의 입력에 따라 정해진 결과를 출력하는 기계적 반응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주어진 입력정보에 대해 가능한 출력들의 범위가 대단히 넓으며, 그 범위 내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이같은 종류의 선택이야말로 지능적 행위의 전형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는 분명히 지능, '인공' 지능을 갖게 됐다.

이런 사태는 참으로 단순치 않은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실리콘칩과 기계적 부속장치들로 이뤄진 기계가 지능적 행위를 한다면 도대체 인간의 특별함이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기계와 같은 종(種)이 되는 것일까. 지능이란 무엇이며, 지능과 생명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물론 아직 인공지능의 기술은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모의해내지 못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그것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불안감이 진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범위 내에서나마 인간의 판단능력을 대행하는 인공지능 기계들은 근대 이래의 사회구조 내에서 이미 하나의 '인간' 으로 대접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근대 산업사회에서 우리의 생활세계는 분업화와 전문화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돼 왔다.

노동자는 오직 노동력만을, 사무직은 오직 사무적 능력만을, 지식인들은 오직 지식만을 요구받는다.

감정과 상상력.공감의 능력 같은 것들은 개인들의 사적인 공간 속으로 철수해 버렸다.

이렇게 인간이 특화된 능력.기능만으로 재해석되는 세계에서 인공지능들은 우리를 압도하는 경쟁자들이다.

부분적이고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는 인간보다 더욱 탁월하기 때문이다.

지치지도 않으며 불평하지도 않는 사무기계.노동기계.지식기계들이 있다면 왜 그것으로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겠는가.

근대 이래의 사회구조 내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진화된 인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의 세계는 인간의 부분화.기능화를 급진적으로 심화시켜왔다.

공상과학 소설들은 이미 이 상황의 귀결을 예견하고 있다.

거기서 인간들, 감성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충동적인 '진짜' 인간들은 번쩍거리는 도시의 음울한 외곽에서 싸우고 사랑하고 쓰러져 자는 부랑아들일뿐이다.

도시의 중심부는 소수의 권력자들과 그들의 충실한 인공지능 부하들이 거주하는 곳. 인공지능의 개념 속에 함축돼 있는 근대의 논리가 교정되지 않는 한 그 공상은 곧 현실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봉재 (서울산업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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