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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뛰는 향토인] 테네시대 김중순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미국 테네시주 마틴(Martin)에 있는 테네시대학교의 석학교수 겸 인류학교수로 재직중인 김중순(金重洵.60)씨.

金교수는 미국 학계에서 한국의 모습을 바로잡는데 헌신해온 재미 인류학자다.

그는 한국계 해외학자중 단일 저자로는 가장 많은 영문저작을 한 학자로 꼽힌다.

그의 처녀저작(77년 발간)인 'An Asian Anthropologist in the South(미국 남부지방의 한 아시아 인류학자)' 는 22년이 지난 지금도 중판을 계속할 정도로 미국 인류학계의 인기 저서중 하나다.

그의 고향은 두메산골인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흔히 '바라미(해저(海底)의 순우리말)' 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金교수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 중앙고, 연세대 법대와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도미, 에모리(Emory)대학교에서 사회학전공으로 석사를 받았다.

이후 조지아대학교에서 인류학박사학위를 따냈다.

그가 테네시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 71년. 당시 학위수여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측이 조교수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金교수는 "처음엔 잠시 있다 한국으로 가려했다" 며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귀국을 늦추다보니 사람들이 좋아서인지 계속 있게 돼버렸다" 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81년 여름 처음으로 일시 귀국해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로 1년간 강의한 것을 시작으로 연세대(93~94년), 서울대(88~89년), 일본 히로사키(弘前)대(90년), 연세대 국제대학원(98년)등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해왔다.

또 지난 90년에는 록펠러재단의 상임학자(Scolar-in residence) 자격으로 이탈리아 벨라지오 소재 벨라지오연구소에서 연구활동도 했다.

테네시대에서도 그의 학문에 대한 공로를 인정, 지난 91년부터 金교수에게 유일하게 석학교수(University Faculty Scholar)라는 직함을 주고 은퇴할 때까지 그의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유학생 시절 어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국이 잘살아야 해외 한국인들도 대접을 잘 받는다" 고 말했다.

金교수는 급변하는 세계적인 경쟁상황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비교문화연구가 선행돼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인류학은 국제화의 첨병" 이라며 "남의 나라 문화도 모른채 그 나라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제대로된 국제화를 돕기 위해 '국제경영과 문화-기업 및 산업인류학의 소개' 라는 저서를 최근 탈고, 출간을 앞두고 9있다.

또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를 종합비교하는 저서 'Doing Fieldwork in Two Worlds, East and West(동서양 두 세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를 2001년 봄 출판예정으로 집필중이다.

그는 한국의 지나친 문화적 서구화지향에 대한 경계를 당부하면서 "한국도 문화에 관한한 온고지신(溫故知新)했으면 좋겠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존고창신(尊故創新)했으면 한다" 고 말했다.

金교수의 고향사랑 역시 남다르다.

현재 미국 집은 그가 "고향이 그리워서 우리 집 뜰 안에 고향을 옮겨왔다" 고 표현할 정도로 봉화의 축소판이다.

뜰에는 수십그루의 소나무를 비롯 대추.단감.큰 밤나무가 들어서 있다.

학만 날아오면 봉화나 다름없다.

그는 식사도 세끼중 한끼는 반드시 한국음식을 먹는다.

부인 김상분(金相芬.59)씨 고향도 경북 상주여서인지 부부간 대화에는 어김없이 경상도 사투리가 끼어든다.

이제 그의 남은 소망은 단 한가지. 그는 "할일이 없으면 35년간 미국에서 익힌 영어라도 가르치며 고향에서 봉사하는가운데 여생을 보내고 싶다" 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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