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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패 1무 뒤 첫 승 거둔 서울대 야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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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야구부 박진수 투수

"그 날 경기를 놓고 보면 그렇게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어요. 포볼이 9개였고, 안타도 4개를 맞았죠. 2사 만루 위기가 두 번이나 있었고, 1.3루에 주자가 나가있는 상황도 한 번 있었고요. 삼자범퇴를 시켰던 건 1회하고 8회뿐이에요. 결국 수비수들이 너무 잘 도와준 덕분이죠. 평소에는 하나 둘 수비실책이 있는데, 그 날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더니, 정말 그랬다. 통산 199패 1무의 전적을 쌓아온 서울대 야구부가 2004 대학추계리그 대회에서 송원대를 상대로 사상 첫 승리를 거둔 것이 지난 1일. 창단 28년만에 팀 최초의 승리투수의 영예를 안으면서 완봉승의 기록까지 세운 박진수(24.체육교육과)씨는 그 기쁨을 모두 동료들의 덕으로 돌렸다.

그동안 팀을 거쳐간 선배들이 모두 그랬듯, 그도 1학년 2학기부터 야구부 생활을 시작한 이래 소원은 '승리 한 번'이었다. "포수 장태진씨가 잘 이끌어줬요. 저와 4년째 배터리에요. 지는 날마다 술도 많이 먹었죠. 우리도 3,4학년이 되면 물이 오를 것이다, 1승 한 번 해보자, 1승해서 우리도 한 번 운동장에 드러눕자고 그래왔죠. "

그렇게 꿈꾸던 1승의 조짐은 그가 투수로 뛰었던 지난달 26일 한일장신대와의 경기에서부터 나타났다. 9회초까지 4대3으로 앞섰던 것. 하지만 9회말 원아웃에 주자가 나가있는 상태에서 2루타를 맞아 승부는 동점으로 끝났다. 물론 무승부를 거둔 것만도 팀 사상 처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요번에는 공을 던지다 6회쯤에 문득 전광판을 보니까 상대팀이 0점이고, 우리가 2점이에요. 이상했죠.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먼젓번 무승부 경기가 생각나더라고요. 근데 8회까지 무실점이에요. 그 때, 이번에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9회 원 아웃에서 주자가 1루, 2루에 나가있는데 다음 타자를 플라이로 잡았어요. 이제 공 하나면 되겠다 하면서 던졌죠. 좌익수 플라이더라구요. 당연히 잡을 수 있는 공인데도 저도 모르게 눈길이 돌아가데요. 수비가 잡는 걸 보고 고개를 돌리니까 포수가 막 달려왔어요. 부둥켜안고 운동장에 누웠죠. 다들 겹쳐져서 뒹굴었죠. "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널리 알려진대로 서울대 야구부는 그저 야구가 좋아서 모인 아마추어팀이다. 선수도 15명 안팎. 고교 시절 선수활동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다른 팀 '선수'들과의 승부는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콜드게임패도 숱하게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다른 후배가 투수로 나섰던 경남대와의 경기는 21대0의 처참한 패배였다. 협회에서는 서울대와의 경기내용을 선수들의 공식기록에 포함시키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 첫승을 거두고 환호하는 와중에도 부원들 사이에서는 패배한 상대팀을 걱정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 서울대 야구부 첫승 직후 기념사진(대한야구협회 제공)

"저로서는 동대문 운동장에서, 그런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죠. 사실 저희랑 경기하는 걸 다들 부담스러워 하죠. 이기는 게 기본이고, 혹시라도 비등한 경기를 하면 욕먹으니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는 대회참가신청을 했는데 저희팀이 대진표에 빠졌어요. 다른 대학 감독님들이 빼버리자고 의견을 모았던 모양이에요. 야구를 좋아하는 우리 총장님이 협회에 얘기를 해서 겨우 출전할 수 있었어요. "

대학본부의 지원과 야구부 선배들의 후원이 있기는 하지만 장비구입에 만족하는 수준이다. "지방경기가 제일 힘들어요. 2주 정도 가는데, 숙박비가 꽤 부담되거든요. 그 사이에 수업이 있으면 또 학교에 왔다가야 하고요. "

그런데도, 심지어 지는 줄 알면서도, 왜 시합을 계속하는 것일까. "야구가 좋으니까요.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저희는 매 시합이 결승이라고 말해요. 시합마다 이렇게 좀 더 하면 되겠다고 배우는 게 있어요. 지는 데 큰 의미를 안둬요. 서울대생이라니까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애들, 안 지고 늘 1등만 해온 애들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요. "

박씨는 '실패를 모르는 서울대생'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선수생활을 할 기회는 없었다. 오랜 꿈이었던 체육교사가 되고 싶어서 1999년 서울대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대신 건국대 체육교육과에 입학, 1년간 야구동아리 활동을 했다. 청소년 대표팀 출신인 박정훈씨 같은 선수를 만나서 "야구에 대해 참 많이 배웠다" . 그랬다가 다시 입시를 준비해 2001년 서울대에 입학했으니 삼수생 나이다. 서울대 야구부에는 박씨외에도 법대 4학년생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경기에 출전하는 김영태씨를 비롯, 삼수생이 적지 않다. 김씨는 고교 1학년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하다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서울대 야구부는 학기 중에는 1주일에 세 번, 오후 4~7시에 연습을 한다. 대회를 앞두고 이번 방학에는 36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한낮부터 훈련을 거듭했다. 학교선배이기도 한 탁정근 감독은 물론이고, 무보수로 선수들을 지도해 온 이영목 코치, 제주도 전지훈련 때 특별지도를 해준 전 두산 소속의 유지훤 코치 등은 이들의 숨은 조력자였다. 성균관대 이연수 감독 역시 꾸준히 교류를 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강의를 피해 관전하러 오는 날마다 유독 성적이 더 나빠 "몰래 보러 와야겠다"고 말하던 신인식 지도교수의 징크스도 1승을 이루던 날 깨졌다. 경기직후 뒷풀이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사회에 진출한 야구부 선배들이 열댓명쯤 나타나 축하를 해줬다. 야구부 주장 박현우씨의 아버지께도 약속을 지켰다. "야구를 좋아해서 늘 응원을 와주셨어요. 지난해 군산에서 경기를 보다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더니 폐암진단을 받으셨죠. 야구부 전원이 임종을 했어요. 꼭 1승을 해서 보답하겠다고 약속을 드렸었는데."

박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서울대 야구장에서는 또다른 팀들의 경기가 한창이었다. 단과대학마다 야구 동아리가 여럿이라 야구부가 대회를 열면 무려 50여팀이 출전을 한단다. 소위 '생활체육'의 이런 저력은 서울대 야구부가 1승을 거둘 수 있었던 또다른 힘이 아니었을까. 박씨는 "학교 곳곳의 운동장이 건물신축으로 사라지고 있어 속상하다"고 했다.

핸드볼이 전공인 박씨는 핸드볼 선수로도 활동중이다. 1주일에 두 번은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체육 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로도 일한다. 졸업반이라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학원에도 다닌다. 꿈꾸던 1승은 거뒀지만 '1승 이후'는 아무도 모른다. 걱정도 된다. 주전들 중 상당수가 4학년이라 내년이면 팀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졸지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팀분위기가 어수선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도 그렇다. "사회에서 이뤄지기 힘든 것을 저희를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박씨는 만년 꼴찌팀의 1승이 주목받는 이유를 이렇게 짐작했다.

한편 서울대 야구부는 25일 열린 인하대와의 경기에서 0대 23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승리를 위한 전진을 멈추지 않고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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