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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상희구 '청량리 오팔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청량리 오팔팔에도 비가 온다

서울에 비오는 날은

청량리 오팔팔에도 눈 온다

서울에 눈오는 날은

청량리역 뒤

단학선원 건너건너

여의도순복음 강북성전에서 2마장

아리랑뷔페 옆

낙원장 여관 끼고 팔분 거리

카페 바위에 핀 꽃 아래쪽

재원 PLAZA 두어 길 앞

컴퓨터 세탁소 앞의 옆골목

피어리스 동쪽

전통폐백 봉순이 안마, 한증 뒤 세 지붕 넘지

300m 혜민교회를 거슬러 봉화석유경유 돌아서

안디옥 교회 복음보청기 옆옆에 우리 누이들

위에 아버지들 곁에 오빠들 사이사이에

언니 언니들 위에 청량리 오백 팔십팔 번지가 있다

- 상희구(尙喜久.57) '청량리 오팔팔' 중

내가 뭐라고 뭐라고 군소리 늘어 놓겠는가.

그저 한번 두번 세번까지 읽어보시기 바란다.

읽고 읽는 중에 절로 흥이 일어나 노래가 되고 북소리가 나고 춤사위마저 물오르게 된다.

버림받은 구역을 이다지도 진지하게 다가가는 긴박함이었다.

청량리역 뒤부터 일러주는 입심대로 따라가면 어느새 눈물이 나고 비가 오고 눈이 온다.

이건 한 전형을 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서울에 바람부는 날은 내 가슴 속에서도 바람분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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