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신나간 언론규제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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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가 또 일을 저질렀다.

정치개혁특위에서 여야가 합의했다는 언론통제 강화방안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지만 우리 국회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심한 작태다.

정당과 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간기구 성격의 선거기사 심의위원회에서 사설.논평을 포함한 선거기사를 조사해 불공정 보도에 대해서는 해당 언론사에 사과문과 정정보도문을 게재토록 하고, 해당 기사의 취재.편집.집필.책임자는 1년 이내의 기간 동안 활동을 금지시킨다는 것이 문제의 방안이다.

계엄령하의 일시적 언론 통제책을 연상시키는 해괴한 법안 내용을 보면서 국회가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발상을 하게 됐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발상은 대한민국 국회가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입법기관으로서 법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드러낸 무지의 소산이다.

법은 현실 문제점을 개선하는 실효성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가 마련한 불공정 선거보도 제재 방안은 현실진단과 처방에서 모두 빗나갔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구상대로라면 내년 총선이 끝난 뒤에는 아마도 특정 정당과 신문사끼리 편이 갈려 공정성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거나, 신문사 정치.사회부 기자 상당수와 정치담당 논설위원 등이 대거 '실직' 하는 세계 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선거보도에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고, 당락에 얽매인 정치인들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불공정' 주장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공정성 시비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언론구제는 정정보도와 명예훼손에 대한 보상장치를 갖춘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이나 형법으로 충분하다.

정치개혁특위 발상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시한 것이라는 데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언론의 선거보도가 불공정 시비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완벽한 처방은 어느 사회에서도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공적 사회 감시자로서의 언론 기능이 중요하며, 그래서 언론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침해돼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토양이 돼 왔던 것이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음으로써 생기는 폐해는 '불공정 보도' 의 폐해보다 훨씬 크다.

국민 스스로 판단할 기회조차 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구상은 해서도 안될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언론자유의 침해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한 의원의 말에 국민 모두가 할 말을 잊는다.

사회적 여론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고 슬그머니 밀실에서 합의를 했다가 들통이 나니까 발을 빼는 모습 같아 추하기 그지없다.

스스로 자질 부족을 드러내고 누워 침뱉는 짓이다.

선거에만 눈이 어두워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의 빗나간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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