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자의 마지막 양심도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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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말 왜들 이러나. 옷로비 의혹사건 사직동팀 최초 보고서 유출경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보름이 다 되도록 핵심 관련자들의 '거짓말' 장단에 놀아나고 있는 걸 보면서 과연 이들이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 보고서 외에는 문건을 만든 적이 없다던 박주선(朴柱宣)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사직동팀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진 데 이어, 최초 보고서를 朴씨에게 주었다는 사직동팀 최광식(崔光植)조사과장의 진술이 나오면서 유출혐의가 朴씨에게로 쏠리고 있다.

그러나 朴씨는 "내사 상황을 구두로 보고받았을 뿐 보고서는 보지 못했다" 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누군가 한쪽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사안의 성격상 정황 외에 물적 증거가 있을 수 없는 터라 검찰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런 사태는 최초 보고서를 입수한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이 사실을 털어놓으면 간단히 풀릴 일이지만, 그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특검팀 출두 당시 '검찰의 장래를 위해…' 라며 보고서 입수경로를 밝히지 않았던 그는 이제 후배검사들의 거듭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단순히 문건 제공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직동팀 내사에 영향을 미친 직권남용 혐의가 드러나는 것을 염려해서인지 알 수 없으나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가 누차 지적했듯이 고관 부인들의 거짓말 소동과 이에 대한 사직동팀과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빚어진 정보의 사유화.축소.은폐 의혹은 이미 특검수사 등을 통해 규명되거나 구체화돼 있는 상태다.

이제는 감추려 한다고 묻혀질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핵심 관련자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확실한 물적 증거가 나오면 관련 사실을 부분적으로 밝히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언제까지 이 사건을 거짓말과 둘러대기로 끌고 갈 것인가.

그들의 말과 행동은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자신들이 몸담았던 정권에도 계속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통치권자의 바로 옆에서 중대 정보를 다루고 검찰권을 지휘하는 핵심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사직동팀의 최초 보고서는 없다" 고 장담하다가 검찰수사로 거짓임이 드러나고,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검찰의 장래를 위한다면서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수사에 나선 후배들을 골탕 먹이는 그들의 꼴이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공직자들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정말 실망스럽다.

이제라도 金씨 등은 스스로 진실을 털어놓고 사태 마무리를 도와야 한다.

그게 공직자로서 남은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지키는 일이다.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은 것 같은 행동은 그만둬야 한다.

그것만이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는 하겠지만 헛되게 사라지지 않는 길일 것이다.

공직자로서 남은 마지막 양심이라도 보자는 게 국민들의 남은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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