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공직사회 혁신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공무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보직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해도 승진이 잘되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장관과 시장.도지사를 지근에서 보좌하는 비서관이나 인사와 예산을 다루는 총무과와 기획관리실일 것이다. 또 인.허가를 취급하고 세금을 부과.징수하고 민원인 접촉이 잦은 관리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소위 물좋은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부침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1970년대는 단연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부서가 인기 절정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하고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었으니 새마을과 근무로 얻어지는 유형무형의 혜택과 보상은 상당했다고 당시의 공무원들은 회상한다. 시.군.구에서는 부단체장이 새마을과장을 겸직할 정도로 힘이 실렸다는 것이다. 승진 1순위인데 누군들 마다했겠는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는 비상계획관이 각광받는다. 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공비의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 발생뒤 전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생긴 자리다. 주로 예비역 소령.중령.대령이 임명되고 임무는 비상사태 발생시 부처의 성격에 맞게 물자와 장비를 동원하고 이동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요한 회의에는 꼭 참석할 정도로 그들의 위세는 직위와 직급을 초월했다고 보면 된다. 당시 정부의 각 부처를 출입하던 보안사 요원이 빼먹지 않던 일과는 비상계획관과의 대면이다. 그 자리에서 정책 추진 상황은 물론 공무원들의 언행과 동태가 거론되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상계획관은 일종의 감시역이었던 셈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는 장관 정책보좌관들이 주목을 끈다. 소신있는 장관들은 부처 업무와 연관있는 전문가를 정책보좌관으로 선발하지만 대체적으로 청와대 등의 추천을 거스르지 않는다. 국회의원 보좌관 혹은 정치권 언저리 인사, 대학과 노동계 출신 운동권이 대부분이다. 주로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권력 핵심부의 정책에 대한 의향이나 인사 의중을 장관에게 전달하는 일을 담당한다. 장관과의 접촉이 잦으니 부처 내에서 발언권이 강화되고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노무현 정권에서는 특히 지난 3월 말 신설된 혁신담당관이 눈여겨볼 보직이다. 혁신담당관은 중앙 행정기관 48곳과 16개 시.도, 234개 기초자치단체에 설치돼 있으며 조직 내에서 최선임자 대우를 받는다. 노 대통령이 혁신담당관의 위상을 피력한 적이 있다. "혁신 보고를 한다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보고를 받는다. 아무 때든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이 실세다."

기존의 업무처리 방식을 혁파해 불필요한 일을 줄이고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해 정책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생산적 조직문화의 조성이 혁신담당관의 공식적인 역할이다. 정작 혁신담당관을 내세워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혁신(革新)'의 속내를 보면 공무원 사회를 다잡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변화와 혁신에 동참하지 않는 공무원의 기강을 직접 챙기겠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복지부동하고 무사안일한 공무원의 의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을 명목으로 기율을 세우겠다는 데 대해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아직 '그럭저럭 잘 넘겨보자'는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 한 행정기관장은 "(혁신에) 혼란스러운 점도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아무튼 혁신담당관이 참여정부의 임기 말까지는 최고의 보직으로 다른 공무원의 부러움을 살 것이 분명하다. 한때 대통령들이 힘을 실어주던 새마을과장 보직이 폐지되고 비상계획관이 극소수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혁신담당관의 앞길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