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대통령과 총리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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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동정권을 운영하다 보면 두 축(軸)간에 더러 이견도 있고 불화도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정권에 함께 참여한 이상 한 팀이 돼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팀워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주 총리공관에서 있은 DJP회동을 보면 과연 우리나라의 공동정권 첫 실험이 성공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앞으로 남은 3년이 걱정스럽다.

우선 이날 나온 발표문을 보자. JP의 총리직을 약 한달 연장하고 두 여당의 공조를 재확인한다는 1, 2항에 이어 합의사항 3, 4항은 이렇다.

"국가미래를 위해 정치개혁과 민생개혁 입법 등을 계속 추진한다" "앞으로의 국정현안은 金총리의 남미순방 후 계속 협의한다. "

정치개혁과 민생개혁 입법을 계속 추진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건 두 여당이 늘 해오던 소리 아닌가.

그럼 최근 들어 혹시 추진하지 못하겠다는 이견이라도 불거졌던 것인가.

앞으로의 국정현안은 계속 협의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대통령과 총리가 국정현안을 협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이것이 어떻게 합의사항이 될 수 있을까. 이런 합의사항은 마치 "…두 나라 정상은 양국관계 발전에 만족을 표명했다" 는 식의 외국간 정상회담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이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전혀 발표거리가 될 수도 없고, 실제 대통령과 총리가 설마 그런 '하나마나한' (?)얘기를 나눴을까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하는 내용이다.

왜 이런 발표문이 나왔는지, 3, 4항의 그 오묘한(?) 뜻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그후에도 밝혀진 것이 없다.

이런 뜻밖의 발표문을 보고 느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동정권의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는 과연 괜찮은가, 제대로 팀워크가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들이 회동결과를 지켜보는 국민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의 DJP회동은 두달 만의 만남이었다.

그것도 대통령이 총리공관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격(格)과 모양새를 면밀히 계산한 만남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그런 발표문이었다.

그러니까 애매모호한 발표문도 뭔가 격과 형식을 갖추자는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곧 한 팀의 두 최고 주전선수들이 만나는 데 있어 아직도 격을 따지고 외국정상끼리(?) 만나는 것처럼 조심스레 접근한다는 뜻이 아닌가.

일상적으로 협의해야 할 한 정부의 대통령과 총리가 두달 만에 만나고 게다가 그 만남의 격과 형식, 발표문에까지 그렇게 주도면밀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면 그들간에는 의외로 높은 벽, 넓은 간격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실제 그렇다면 이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보통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그날의 회동은 정권핵심이었던 전 검찰총장이 사상 처음 구속되고 대통령에 대한 허위보고, 거듭된 거짓말 등으로 정권의 도덕성.신뢰성이 심각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열린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최고지도자들로서는 당연히 이런 상황이 온 데 대해 스스로의 책임감을 밝히고 뭔가 국민에게 대책을 제시했어야 할 자리였다.

그러나 그런 입장표명은 전혀 없이 총리의 퇴임시기를 늦춘다는 것과 두 여당의 공조만 확인했으니 회동을 쳐다보는 국민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셈이다.

특히 JP로서는 이번 회동에서 또 한번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회동이 있기 불과 1주일 전 그는 12월 중 퇴임을 공식발표까지 하고서도 대통령의 요청이 있자 그 자리에서 뒤집은 것이다.

JP는 그동안 "합당은 안한다" "자민련은 자민련의 길을 간다" 고 외치고 다녔지만 회동 후엔 오히려 합당이 기정사실처럼 돼가고 있다.

내각제 유보에 이어 공식발표까지 뒤집는 총리를 국민이 어떻게 믿고 따를 것인가.

이것이 공동정권이 가진 한계일까. 필자는 지난해 2월 'JP의 2인자 3수(修)' 라는 글에서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그런 2인자가 아니라 대통령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면 고성(高聲)으로 토론도 하는 2인자가 돼라" 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제 JP는 한두차례 '몽니' 를 부리는가 했지만 대통령을 만나기만 하면 말을 바꾸었다.

소위 얼굴마담 총리가 아니라 50% 지분을 가진 오너 총리도 이런데, 다른 누가 총리가 된들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안들 수 없다.

한달 후 새 총리가 나온다는데 결국 우리나라의 총리들은 '바지저고리' 의 행진만 되고마는 것일까.

공동정권의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난 약 2년의 경험을 토대로 대통령과 총리간의 팀워크 문제.역할분담 문제.총리직의 유효성을 살리는 문제 등을 잘 검토해야 한다.

앞으로 3년을 계속 '실험' 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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