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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멀쩡하던 저 사람, 운전대만 잡으면 왜 야수가 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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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TRAFFIC 트래픽
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김영사, 768쪽, 2만9000원

얼핏 일상적이고 소소한 영역에서 이토록 풍부한 드라마를 뽑아내다니 그게 우선 신기하다. 운전이라는 게 15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기술이 동원되는 고난도 행위라서 “뇌수술 외과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112쪽)이라는 경고만으로도 이 책은 매일 자동차와 버스·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긴장시킬 것이다. 교통경찰이나 교통정책 입안자, 차 회사·보험사 관계자들도 물론이다.

책은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교통상황이야말로 인간 내면의 축소판으로 규정하는데, 미국의 심리·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지난 해 이 책을 펴냈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2륜 전차를 몰던 고대 로마의 폼페이 유적지에서 19세기 뉴욕, 그리고 21세기 중국과 코펜하겐까지 도로 현장을 무대로 교통체계의 역사와 운전습관의 비밀을 파헤진 책.”

저자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사회학자라고 자부한다. 그런 그가 쓴 이 책은 매일 품어온 궁금증, 그러나 잊곤 했던 질문에 대한 추적 과정이다. “왜 내가 선택한 차선은 항상 밀리고, 옆 차선은 뻥 뚫려있지?” “왜 평소에는 멀쩡하던 사람들도 핸들을 잡는 순간 공격적 성향으로 변하는 것일까?” “왜 여성 운전자는 남성과 다를까?” “도로는 점점 많이 깔리는데 체증은 왜 더 심해지는 것일까?” “왜 뉴욕과 인도 델리 그리고 중국 베이징의 시내 교통상황은 나라마다 다를까?”

그런 궁금증을 세계의 운전전문가 및 교통 공무원들과의 방대한 인터뷰와 자체 연구를 통해 풀어낸 것이 이 책이다.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운전이 얼마나 복잡한 멀티태스킹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사례가 책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 자동차 ‘스탠리’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가 개발한 스탠리는 GPS·센서·카메라 등으로 완전무장을 했으나 모하비 사막 211㎞를 완주하는데 무려 7시간이나 걸려야 했다.

자동차 운전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도 행위여서 인간은 운전대를 잡는 순간 뇌의 코드가 바뀐다고 한다. 그러니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 위에선 평소 보기 힘든 온갖 인간군상을 만날 수밖에 없다. [중앙포토]

비교적 단순한 환경인 사막과 달리 돌발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는 도로 위라면 스탠리는 과연 어땠을까? “실제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을 로봇에게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게 대학이 내린 최종 결론임을 참조하시라. 이 책이 펼쳐 보이는 도로 위의 미스터리는 ‘운전과 교통체증에 관한 이모저모’ 소개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도로는 관심의 사각지대였다.

“도로가 도로교통법상의 법규와 고유의 특징을 지닌 장소이기 보다 인간의 행동 패턴을 확인하는 장소라는 점을 알고 있는가? 생각해보라. 도로 외에 서로 다른 연령·종교·사회계층·성별·정치적 신념·라이프스타일·심리적 성향 면에서 아무런 규제 없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또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궁금증. 왜 사람들은 핸들을 잡으면 성격이 돌변하지? 저자에 따르면 핸들을 잡는 순간 머리의 코드가 전환된다. 일시적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셈인데, 일단 인지감각부터 왜곡된다. 도로를 보행할 때는 난폭 운전자들의 못된 운전습관에 분통을 터뜨리던 그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이팟에 몰두한 채 룰루랄라 걷는 젊은이들에게 화를 버럭 낸다. 나쁜 상황 발생도 순전히 남의 탓으로 돌린다. 보행 때보다 거리를 점유하는 면적이 10배 이상 커졌으니 운전자는 과시욕에 사로잡힌 ‘난폭자 헐크’인 셈일까? 그래서인지 모든 나라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을 욕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알바니니 놈들 정말 운전 더럽게 못해’라고 비웃는다. 독일 사람들은 ‘네덜란드 놈들은 최악이야’라고 말하고, 뉴욕의 운전자는 뉴저지 사람들을 비웃는다.”(51쪽)

그럼 왜 사람들은 차선을 자주 바꿀까? 일종의 착각이다. 운전자는 자신을 추월한 차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며, 자꾸만 속력을 낸다. 그런가하면 도로는 그 나라 민족성의 얼굴이다. 부자 나라일수록 사고가 덜하지만, 부패가 덜한 나라일수록 사고율이 낮다.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부패 경찰이 득시글대는 러시아는 유럽 내 교통사고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일본 운전자가 매너가 좋다면, 중국은 영판 다르다. 시끄럽고 공격적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폭발적이지만, 그렇다고 인도처럼 무질서함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도로 위에 핀 인간 삶의 숱한 만화경, 그게 이 책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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