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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 기억 속 한국전쟁 담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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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입양이란 경험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저를 자유롭게 만들기도 했어요. 덴마크와 한국 사회를 함께 경험하면서 내부인과 외부인의 시각을 동시에 갖게 됐죠. 예술가인 저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됐는지도 몰라요.”

제인 진 카이제(29·사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16세 때 이미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로 예술혼이 충만했던 소녀는 2001년 어느 날 벼락처럼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친부모를 만났다. “행복과 슬픔이 마구 뒤섞이던 감정”을 작품으로 되새김질하며 덴마크 왕립예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미국 UCLA에서 예술학석사(MFA)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이제 뉴욕·몬트리올·홍콩·LA 등 세계 곳곳을 돌며 작업을 하는 코스모폴리탄 예술인이다.

그가 이번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에게 친부모를 찾아준 사단법인 해외입양인연대(www.goal.or.kr, 사무총장 김대원)가 주최하는 제1회 해외입양인 종합예술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번 행사에 그는 ‘Korea War Memorial’이라는 비디오 작품을 내놨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해외입양아들과 한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각각 촬영한 9분19초, 4분58초짜리 영상물이다.

끝난 지 56년, 그래서 우리에게 박제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전쟁은, 그에겐 새로운 화두였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한국전쟁의 흔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흔적이 지금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입양인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되는지 그 연관 고리를 알고 싶었습니다. 전쟁이야말로 한국에서 입양이 시작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니까요.”

작가가 만든 꼭두각시 인형을 받은 작품 속 해외입양인들은 탱크와 트럭 앞에서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인형을 유독 괴롭힌다. 그는 “그냥 인형을 주고 놀라고 했을 뿐인데 이런 행동을 해 깜짝 놀랐다”며 “심리학자에게 보이니 어릴 적 부모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을 경우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 여자인형이야말로 입양인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터다. 자신을 버린 부모, 그리고 나라라는.

하지만 그는 그리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듯했다. “물리적 국경이 의미를 잃은 글로벌시대, 더 이상 태어난 곳에 속해서만 살아가는 시대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는 ‘입양인 아티스트’라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달갑지도 않다고 했다. 여류 아티스트라고 잘 부르지 않는것 처럼.

덴마크 부모와 제주도에 살고 있는 부모 중 누구에게 더 자주 연락을 하느냐고 물었다. 잠깐 눈을 찡긋거리더니 “덴마크 부모”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아무래도 언어문제도 있고 …”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대뜸 이스탄불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잖아요. 흥미로운 곳이에요. 한국과 덴마크가 섞여 있는 저처럼.”

글=정형모 기자
사진=해외입양인연대 제공

◆제1회 해외입양인 종합예술제=10월30일~11월 1일 서울 대치동 크링갤러리에서 열린다. 벨기에에 입양됐던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를 비롯해 색소폰 연주자 조나단 하프너(미국 입양인 2세), 현대 무용가 레나 순희 메이어코드(독일) 등과 국내 설치미술가 안윤모,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림, 소리얼 오케스트라 등이 함께 전시 및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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