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캉첸중가 원정대 셀파로 활동한 다망씨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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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셀파도 히말라야 8천m 고봉 등정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셀파에게 중요한 것은 등반대의 영원한 조연이라는 점을 망각해선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

한국 캉첸중가(8천5백86m)원정대의 사다 셀파(셀파의 우두머리)로 활동했던 앙 다와 다망(29)씨가 대한산악연맹의 초청으로 최근 한국을 찾았다.

그는 히말라야 8천m 고봉을 한국원정대와 함께 8차례의 올라간 경력으로 국내 산악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 그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지난 9월 21일 발생했던 사고상황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캠프Ⅳ에 오르는 루트를 개척하다 눈사태를 당해 경사 70도나 되는 설사면(雪斜面)을 따라 2백50m 정도 추락했습니다. 나는 오른손 바닥과 허벅지가 깊이 패는 부상을 당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한도규 (37.전남연맹).현명근 대원 (32.KBS 기자)은 '불귀의 객' 이 돼버렸죠. 지금도 추락하는 그 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

셀파는 생명에 대한 위험부담은 크지만 수입이 적지 않은데다 나름대로 명성도 얻을 수 있어 지원자가 많다고 한다.

네팔의 샐러리맨 한달 봉급은 1백달러 정도. 그러나 1년에 두 세번 원정대와 생활하는 셀파는 한번 원정에서 장비비 포함 1천5백달러 정도를 받는데다 등정에 성공하면 원정대에 따라 약간의 보너스까지 챙길 수 있다.

포터와 키친보이를 거쳐 20살때부터 셀파생활을 시작한 다와씨는 에베레스트(8천8백48m.3회).안나푸르나(3회).마나슬루(8천1백63m.1회).낭가파르바트(8천1백25m.1회)를 한국원정대와 함께 올랐다.

그중에서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과 엄홍길 대장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고 중상을 입었던 98년 안나푸르나 등정이 셀파 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는 회고했다.

"한국인은 다정다감하기 때문에 다른나라 원정대보다 일하기가 편하다" 며 " '작은 탱크' 엄홍길 대장이 14좌를 완등하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목표" 라고 설명하는 그의 마음은 벌써 히말라야의 고봉을 찾고 있었다.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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