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직 전문기자리포트] 말많은 고속도 통행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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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도시권 주민들의 고속도로 통행료 납부 거부 운동이 더욱 거세진다.

수년전 시작된 경기분당주민의 거부운동이 이제는 경기구리.대구칠곡.인천.울산 등지에도 급격히 번진다.

최근 주민들은 "아예 톨게이트를 없애라" 고 요구하고, 국회의원들도 "출근 때는 15㎞까지 받지 말라" 며 편을 든다.

한국도로공사는 완강하다.

지난 달 분당 주민과의 물리적 충돌 후 "통행료를 거둬야 고속도로를 건설한다.

빚도 갚아야 한다.

대도시권 주민이 안 내면 다른 이용자가 더 내야 한다.

고속도로에 단거리 이용자는 통제돼야 한다" 등 안 받을 수 없는 이유를 적극 홍보하며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중재해야 할 건설교통부는 조용하다.

"공청회가 어떻겠느냐" 는 질문에 "그래 봐야 문제만 불거진다" 는 관계관의 답변이다.

이처럼 해법은 막연한 채 주민.당국은 거친 논쟁만 주고받으며 국력을 소비하고 있다.

◇ 무엇이 문제인가〓30년 묵은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체계는 내는 사람이 아닌 받는 기관 위주다.

수도권 통행자 절반은 돈을 안 내고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누구는 25㎞를 가는데도 통행료를 한푼도 안내는데 누구는 1.5㎞만 가도 1, 100원을 낸다.

도로공사는 25㎞까지 가는 무료 통행자의 원가를 1.5㎞만 가는 유료 통행자에게 얹어 받는다.

누가 내든 받을 돈의 합계만 맞추겠다는 계산법이다.

이 경우 새 고속도로가 생기면 전체 고속도로 원가는 더욱 높아져 기존도로 통행료를 인상해야 하고, 결국 유료 통행자 부담은 계속 높아지게 된다.

도로공사는 또 통행료를 받으려 고속도로끼리 연결을 안 하기도 하고, 톨게이트를 설치하느라 진입.진출로를 단축해 차량 지체를 일으킨다는 지적도 받는다.

통행거리가 짧은 대도시권의 경우 톨게이트를 설치하기 힘들어 진출입로를 띄엄띄엄 놓는다.

때문에 고속도로가 한가해도 들어가기 힘들고, 밀릴 때는 나갈 곳이 없어 한없이 고속도로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고속도로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도 도로 이용자들은 "이미 충분히 냈다" 고 반박한다.

당국이 통행료 외에 교통세(휘발유.경유 가격의 70%)로 93년 2조원, 올해엔 9조원 넘게 거뒀다.

그 중 고속도로엔 24%만 배분하고 40%를 국도 건설에, 나머지는 철도(18%), 항만.공항(15%), 광역교통시설 등에 썼다.

내년에도 별로 타지 않을 지하철, 고속도로와 나란한 4차선 국도, 불요불급한 공항.항만에 투자는 계속된다.

이를 조금만 줄여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아예 안 받아도, 또 도로공사가 9조원 빚에 허덕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 대안〓징수비용을 제외하고 연간 5천억~6천억원 수익을 올리는 현 통행료 징수제도는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

외국도 몇 나라를 빼고 대도시권에선 통행료를 안 받는다.

특히 순환도로에선 절대 징수불가다.

시설투자가 늘어 통행료를 받는 비용이 엄청나고 교통 흐름도 왜곡되기 때문이다.

단거리 교통 흐름을 통행료로 조절하겠다는 발상도 바뀌어야 한다.

피크시간대 대도시권 도로는 어디나 혼잡한데 1분이 아까운 통행자가 통행료를 받는다고 돌아갈 리 없다.

만약 돌아간다면 사회적으로는 그만큼 손해이기도 하다.

더욱이 피크시간대가 아닐 때는 교통량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

안전하고 빠른 도로는 가능한 한 많이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통행량을 조절하려면 통행료보다 교통공학적인 통제기법(램프미터링 등)이 더 효율적이다.

결국 대도시권 고속도로 통행료는 '징수 폐지' 가 바람직하다.

고속도로 연장이 늘수록 누구나 혜택을 보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원칙을 고집할 필요성도 작다.

더 필요한 재원은 유류세에 얹는 게 돈이 안 들고 간편하며 교통량 감소효과도 큰 방법이다.

음성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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