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무역협상단 새로운 전략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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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뉴라운드 출범을 목적으로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던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의가 결렬됐다. 1백35개 회원국은 결렬 직후 내년초 제네바에서 다시 회의를 갖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여기서도 합의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뉴라운드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 정부가 당분간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여력이 없다.

미국은 WTO각료회의가 열리기 전 중국과 쌍무협상을 통해 중국이 WTO에 가입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내년 3월 의회의 승인을 얻어 중국과 항구적인 정상무역관계(NTR)를 체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애틀회담의 실패는 의회내 반대파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이제 미국 정부는 당연한 수순 같던 중국의 NTR승인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또 내년엔 대통령선거가 있는데다 무역대표팀의 위상도 떨어졌다.

협상전문가들은 새 대통령이 당선돼 무역대표팀을 다시 구성하기까지는 뉴라운드 협상을 주도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두번째 이유는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나타난 회원국간의 이견(異見)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점이다.

회원국들은 농산물.서비스.반덤핑.노동.환경.투자정책 등 거의 모든 의제에서 대립했다. 예컨대 같은 선진국 그룹인 미국과 유럽연합(EU)조차 서로를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은 EU가 농산물협상에서 유연하지 못했다고 비난했고, EU는 미국이 의류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회원국간에 상호조정을 위한 냉각기간이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협상전문가들은 뉴라운드에 대한 회원국간의 합의도출이 가능한 시점을 미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회원국간 조정작업이 마무리되는 2001년 이후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것도 낙관적인 전망이다.

과거의 예를 볼때 협상타결에 걸린 기간은 도쿄라운드 6년, 우루과이라운드 8년이었다. 이때는 쟁점도 뉴라운드 협상 때보다 단순했다. 또 시애틀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잘 조직된 비정부기구(NGO)들도 많지 않았다.

협상방식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원국들이 기존에 합의한 의제(농산물.서비스 추가개방)에 초점을 맞춘 뒤, 시간을 가지면서 전자상거래.노동.환경 등 새로운 의제의 이견을 해소하는 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런 변화조짐이 한국에는 어떻게 작용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적절한 기회' 가 될 수 있다. 우선 한국은 시애틀에서 거론된 의제들에 대해 다시 꼼꼼히 따져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농업과 서비스분야 추가개방 문제는 이미 우루과이라운드 때 2000년에 재협상하기로 결정된 의제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반덤핑.노동.환경 등에서는 아직 어떤 합의안도 없다. 회원국들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은 이들 새로운 의제에 대해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건도 좋다.

시애틀각료회의의 결렬로 개발도상국들의 발언권이 다음 협상에서는 커질 전망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지나친 독주가 결렬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우리와 상당부분 이해가 일치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이들 국가들과 연대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의제가 채택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공식적인 회의는 컨벤션홀에서 열렸지만, 정작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회원국간에 1대1로 진행하는 비공식적 물밑접촉에서 나왔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무역협상단이 전열(戰列)을 정비하고 바쁘게 뛸 때다.

김석한 <워싱턴 아킨검프 법률회사 매니징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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