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주선씨 스스로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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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옷 로비' 사직동팀 최초보고서 추정 문건을 실제로 사직동팀이 작성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연정희씨에 대한 내사결과가 사직동팀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더욱 뚜렷해졌으며, 사태는 국가기관 정보의 사유화(私有化)와 축소조작 및 은폐기도라는 정권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났듯 '옷 로비' 의혹은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장관부인들이 벌인 돌출행동에 대한 국가기관의 비정상적인 대응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랬듯이 이 사건을 '치맛바람' 에서 '정권의 신뢰' 문제로 악화시켰다.

이 문건이 어떻게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에게 전달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사직동팀이 작성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현 정권의 사직동팀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됐다고 할 것이다.

사직동팀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된 특별조직이다. 모든 활동이 대통령을 축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런 조직이 작성한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총장에게 유출됐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金씨는 부인이 검찰권 행사와 관련해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는 상태였다. 사직동팀 정보가 사사롭게 취급된 자체가 통치기능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사직동팀이 정보를 주는데 그치지 않고 延씨 문제를 축소하기 위해 보고서 내용을 꿰맞추고, 나중에 그같은 의혹을 받자 그마저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직동팀을 관리한 박주선(朴柱宣)전 법무비서관은 최초보고서가 공개되자 그같은 문건을 작성한 적도 없고 金전총장에게 준 일도 없다고 말했다. 또 그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초보고서에 1월 14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는 점을 지적하며 사직동팀 내사는 1월 15일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초보고서가 사직동팀에서 만들어졌음이 드러난 지금 그의 말은 신뢰하기 어렵다. 사직동팀의 생리상 그가 보고서를 몰랐을 리 없다. 延씨 부분 조작에 사직동팀이 관련됐음을 감추기 위해 최종보고서에 맞춰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

이제는 朴씨 스스로 모든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왔다. 대통령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혀 책임 있는 사람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 고 밝혔고, 검찰 수사로 의혹의 꺼풀이 하나 둘씩 벗겨지고 있다.

그런데도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사직동팀 관계자들만 유독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관계자들이 연가를 내고 일제히 잠적한 것은 또 무엇인가. 국정 기강을 문란케 한 '대통령의 사람들' 이 또 다른 기강문란 행위를 저지르고,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진실을 숨기려 해서는 안되고, 숨길 수도 없다. 스스로 나와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지는 것만이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사람다운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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