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의원들의 '밖으로'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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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일 국회 본회의는 10개에 달하는 법안과 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했다.출석의원이 법안처리에 필요한 최소인원(의결정족수 1백50명)에도 못미쳤기 때문이었다.

결석 핑계는 갖가지였다.화성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를 나간 의원도 있었고,지역구 국정보고대회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데 있다.심지어 의사정족수인 50명을 채우지 못해 본회의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다.지난 10월26일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때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정부답변을 서면으로 듣는 ‘편법’을 써야했다.그 다음날엔 또다시 성원미달로 정회했고,그대로 산회됐다.

당시 박준규(朴俊圭)국회의장은 정회방망이를 치며 “속개된다고 해도 사회는 안보겠다.누구든지 사회를 봐서 국회를 하라”고 개탄했다.

사라진 의원들을 찾으려면 당행사에 가보면 된다.국민회의·자민련·한나라당 할 것없이 총재등 지도부가 주관하는 행사엔 의원들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민다.8일 남미순방길에 오른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출국 행사장도 30여명이 넘는 자민련 의원들로 북적됐다.

이러다보니 민생만 멍든다.정기국회에서 다루는 법안 대부분은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민생관련법안인데 제대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의원들이 이처럼 ‘직무유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내년 4월의 선거와 공천을 의식하기 때문이다.의정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보다는 지도부가 매기는 ‘충성도’점수가 공천과 당락을 좌우한다고 믿는 것이다.

의원들의 이같은 직무유기를 막으려면 유권자들이 본때를 보여야한다.총선에서 다시 당선되는 의원들의 비율은 대략 50-60%정도다.

‘살아남는’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충실했던 의원이냐,아니면 지도부에게 맹종하는 의원이냐에 따라 16대 국회의 질이 좌우된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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