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운전면허' 사기단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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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엔이 발급하는 것처럼 만든 가짜 국제운전면허증이 시중에 나돌아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청은 최근 유학원.외국대사관 주변에 "전세계에 통용된다는 '유엔 국제운전면허증' 을 발급해 준다" 고 속여 장당 수십만원씩을 받아 가로채는 사기단들이 기승을 부려 수사에 착수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유엔은 어떤 종류의 국제면허증도 발급하지 않는 데도 유엔 면허증의 신청 절차를 묻는 전화가 경찰관서에 잇따르고 있다" 며 "현재 가짜 면허증 4백여장을 판 일당 3명을 상대로 면허증의 제작.유통 경로를 캐는 중" 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미동포가 운영하는 미국 한 유령회사가 유엔으로부터 국제운전면허증 발급 권한을 위임받은 것처럼 속인 뒤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인터폴을 통해 미국 측에 공조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조사 결과 유학준비생 李모(26)씨는 최근 한 해외용역업체를 통해 29만원의 수수료를 내고 유엔 면허증을 발급받았다는 것이다.

이 면허증의 위쪽에는 '1949년 9월 19일 유엔도로교통조약(제네바협약)에 따른 유엔 운전면허' 라고 명시돼 있다.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국제운전면허증의 유효기간은 1년인데 반해 李씨가 받은 면허증의 유효 기간은 2004년 6월 19일까지로 기재돼 있으며, 뒷면에는 신분증(ID카드)으로 대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자기띠가 붙어 있다.

경찰은 사기단들이 광고를 통해 영어.일어.중국어.아랍어 등 11개국어로 자세히 발급 안내까지 하면서 유학생이나 해외 주재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편 이같은 국제면허증 사기행각은 해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난 5월 도쿄 신주쿠에서 교통사고를 낸 50대 남자가 유엔 발급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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