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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가슴으로 낳은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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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 둘은 배로 낳았고 작은 애 둘은 가슴으로 낳았죠."

대전시 서구 가수원동에 살고 있는 양근율(46.한국철도기술연구원 선임연구부장).김외선(45)씨 가족은 공개 입양 가족이다. 고3인 장남 성민(18)이와 둘째 성휘(12)는 생자(生子)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셋째 성진(8)이가 2000년에, 막내 성현(6)이는 2년 전 가족이 되었다.

"199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6년간 유학을 했어요. 아이를 낳고도 입양을 하는 그 나라 사람들을 접하면서 '아 이렇게도 사는구나'하고 느꼈죠. 특히 한국에서 입양온 애들을 보면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관심이야 가질 수 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법. "우리 부부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고아원에 자원봉사하고 온 날엔 아이들이 눈에 밟혀 밤잠을 설치는 거예요. 가슴도 답답하기만 하고….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죠."

애들도 "어린 동생이 생기니 좋다"고 선뜻 동의했다. 막상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시댁에선 '입양하려면 아예 호적을 파라'고 하셨죠. 친정 어머니는 '사람은 그저 키워봤자 소용없다. 너만 죽도록 고생한다'며 뜯어 말렸고요. 지금이야 다들 예뻐하시지만…." 아내 김씨의 회고다.

성진이가 처음 왔을 땐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가족들은 네살배기의 행동이 귀엽기만 했고, 복지기관이 아닌 가정을 처음 접해서인지 성진이도 마냥 신기해했다. 그러나 두달쯤 지나면서 하나 둘씩 문제가 불거졌다. 우선 기차와 버스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지적 능력이 떨어졌다. "아무리 얘기해도 끝까지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거예요." 거짓말도 뻔뻔하리 만큼 잘 둘러댔고, 식탐도 심했다. "하루는 찬장에 둔 초코파이가 몽땅 없어졌어요. '네가 먹었구나'라며 부드럽게 물었는데 아니라며 딱 시치미를 떼잖아요. 몇번 다그치자 '하나만 먹었어'라고 말을 바꾸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 '솔직히 얘기할 때까지 벽 보고 서있어'라고 했죠. 반나절을 꼼짝 않더라고요.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6개월이 지나자 밥먹는 것조차 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때 도움을 준 곳이 한국입양홍보회(MPAK)였다. "입양가족끼리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았죠. 갓난아기가 아닌 세살 이상 연장아를 입양한 가족들은 어려움이 비슷하더라고요. 시설에선 비슷한 또래끼리 지내잖아요. 엄마의 보호가 없으니 본능적으로 생존 욕구가 생기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그걸 알게 되니 성진이도 조금씩 이해가 되는 거예요."

2년쯤 지나 성진이가 온전히 한가족으로 느끼게 되자 한명 더 입양했다. "애 속내도 뻔히 알고, 과정이 어떠할지도 짐작이 되니 막내는 어떻게 키웠나 기억도 안나요."

그래도 양자에 대한 마음과 생자에 대한 애틋함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 김씨의 대답은 이랬다.

"몇년을 살 부대끼고, 혼내고, 지지고 볶고 살아보세요. 생자니 양자니 전혀 의식 못해요. 오히려 애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벅차죠. 애아빠랑 연애할 때보다 훨씬 더 설레요."

대전=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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