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형식 빌어 쉬운 방법론 제시 '아주 철학적인 하루'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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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나뭇잎이 떨어지고 떨어져, 이제 자취를 감추고 눈발과 쌀쌀한 바람이 뺨을 매섭게 때리고 나서야 "계절이 바뀌었구나" 라고 느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뭘까. 사색하지 못하는 것, 삶에 대해 "왜" 라고 질문 하나 던지지 않고 앞으로만 질주하는 이들의 기착지는 도대체 어딜까.

한번 자문해 보자. '하루하루 살면서 철학해 본 적이 있는지' . 혹시 없다면 오늘이라도 철학 한번 해보자. 철학을 하면 보이는 것과 철학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게 마련. 단언컨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만큼 그리고 마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거리만큼 그 차이는 현저하다.

혹 그 철학하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 방법론은 '아주 철학적인 하루' (강주헌 옮김.사피엔티아.7천5백원)가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도 좋겠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딜(52)이 10대 소년 필을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그에게 경험토록 하는 철학적인 하루는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하다.

특히 생활 속 철학의 틈새를 요리조리 쑤셔놓는 익살스런 주인공 필이 매사에 의문을 갖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에서 누구나 마치 잊고 지낸 것을 발견해내듯 "아, 그렇지" 란 말을 연발할 것. 거기다 10대의 맑은 마음이 던지는 진리에 대한 의문은 세상에 닳고 닳은 어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철학소설이란 장르로 분류되는 '아주 철학…' 는 평소와 다름 없이 잠에서 깨어난 필의 일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날은 아주 색다른 날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샘솟았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물이, 역사 교과서의 기록들이, 심지어 자신의 이름이 필이라는 것까지. 사건은 이처럼 필이 진리에 대한 회의를 가지면서 본론에 들어간다. 그날 역사시간 선생님이 필을 부른다.

그런데 "제 이름은 필이 아닙니다.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라고 답하는 필. 왜 그러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전에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가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제가 데카르트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란 엉뚱한 답을 내놓으면서 선생님과 필의 '철학논쟁' 은 불이 붙는다.

실제 우리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필은 바보취급을 당하고 말 일이지만 선생님의 배려로 필은 그 의문을 한동안 지속시킬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왜 내가 필이지.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항상 진리를 말할 의무가 있을까' 처럼 기본적인 철학적 물음에서 '스스로 텔레비전의 채널을 선택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텔레비전 쪽이 그들을 고른다' '진리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안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거야' 같이 꽤 심도 있는 물음의 해답을 찾아가는 주인공.

여기에 어른들의 충고 뒤에는 늘 감춰진 진리, 분명하게 드러내 말할 수 없는 조금은 위선적인 진리가 있다고 느끼고, 어른들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권리를 빼앗는다는 비판적 시각도 갖춘 어린 철학자 에게서 진리를 찾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어렵잖게 배울 수 있다.

주장만 난무할 뿐 논리가 부재한 이 세태에 딱딱한 논문이나 개념 중심의 철학서가 아니라 소설이란 형태를 빌어 철학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논리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만하고 특히 생각할 틈을 잃어버린 어른들은 물론 논술 시험을 앞둔 입시생이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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