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 논 물대기'식 법안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회가 정치개혁 협상이나 다른 법안 심사과정에서 지나치게 자기네 잇속 챙기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경우 의원직사퇴 시한에서 기존 지자체장보다 훨씬 유리하게끔 선거법을 고치기로 한 것이나 법사위의 '법조계 싸고돌기' 식 변호사법 개정 움직임이 그 대표적 사례다.

가뜩이나 꽉 막힌 정국 속에 무엇 하나 시원히 풀리는 일이 없는 마당에 정치개혁은 뒷전이고 의원 이기주의만 무성하니 국민의 정치불신만 높아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현직 자치단체장이 선심성 정책으로 교묘하게 사전선거운동을 펼 우려가 많으니 아예 선거 반년 전에 사퇴하게 만들자는 발상도 한 고육책(苦肉策)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다른 출마자와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지자체장의 사전선거운동은 지방의회나 선관위 같은 다른 견제수단에 맡겨야지 국회가 '원천봉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입법권 남용 또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뒤늦게 한발 후퇴했지만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당초 합의안이 아예 국회의원직을 유지한 채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런 비난도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어제 열린 국민회의 고위당직자회의마저 이같은 선거법 '개악(改惡)' 움직임을 지적하고 재협상하라고 정치개혁특위에 촉구했겠는가.

선관위에 대한 지나친 견제도 현역의원 위주의 법안심사 탓으로 보인다. 선거공영제 확대를 명분으로 국고에서 대주는 선거비용 범위를 넓힌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선관위가 요청한 선거사무소 출입권한.선거비용 실사권한 강화 등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한 것은 자기네 이익만 좇으면서 선거부정 적발가능성은 최소화하겠다는 심사 때문은 아닐까.

국회 법사위가 변호사법 개정안을 다루면서 전관예우 금지.법조비리 내부고발자 보호 관련조항 등을 삭제 또는 완화하기로 추진 중인 것도 시대흐름이나 국민여론을 외면한 처사다.

법조계 출신 의원이 같은 식구의 이익만 앞세운다는 지적을 피할 도리가 없다. 여야는 좀 더 당당하고 사심없이 현안에 임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문제만 하더라도 행정부 견제력 등을 감안해 현재의 의원정수를 유지하자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국민여론이 빗발칠 때는 여야 모두 의원수를 줄이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그걸 번복하겠다고 나서니까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더구나 공동여당의 경우 이미 지난 9일 의원정수를 2백70명으로 줄이는 선거법 개정안까지 제출해놓은 상황이다.

국민의 대표답게 매사에 공(公)을 앞세우고 일관성을 유지하면 될 것을 '제 논 물대기' 에만 골몰하니 국민의 비판과 불신만 자꾸 쌓여가고 있다. 비교적 비중이 덜한 사안들에서도 이러니 선거구 같은 난제는 어떻게 마무리지을 작정인지 걱정이다. 얼마 안남은 정치개혁특위 가동기간 중이라도 국회가 좀 더 분발하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