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영화 모방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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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화예술이 시작된 이래 영화의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누구일까. 1백87편에 등장하는 탐정 셜록 홈스다. 2위와 3위는 드라큘라(1백38편)와 프랑켄슈타인(96편)이 차지하고 있다.

모두가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셜록 홈스는 영국작가 코넌 도일이 창조해 낸 탐정이고, 드라큘라는 아일랜드 작가 브람 스토커의 괴기소설에 등장하는 흡혈귀며, 프랑켄슈타인은 영국 여류작가 메리 셸리의 동명 괴기소설에 나오는 물리학자다.

셜록 홈스와 드라큘라는 실존인물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설혹 그들이 실존인물이었다 해도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파묻혔을 인물들이다. 하지만 소설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실상 이들을 대중의 뇌리 속에 깊이 새겨넣은 것은 영화였다.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편수가 대변하고 있지만 지난 한세기 동안 이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들이 영화 속에 처음 등장하던 20~30년대에는 이들을 흉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멋의 상징으로 셜록 홈스를, 악의 상징으로 드라큘라를 흉내내資?했던 까닭은 이들을 흉내냄으로써 대체(代替)욕망을 성취하려 했기 때문이다.

대중예술, 특히 영화는 인간의 그같은 욕망을 부추긴다. 대중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偶像)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우상 그 자체가 된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50년대 '로마의 휴일' 에 출연했던 오드리 햅번의 헤어 스타일이 한동안 전세계를 휩쓸었던 것이 좋은 예다.

영화를 흉내내고 스타를 흉내내는 것은 대중의 속성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것이 범죄로 이어지게 되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영화보다 더욱 실감있게, 영화보다 더욱 멋지게 범행하려는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몇해 전 미국의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영화 속의 범죄와 폭력이 실제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봤으며, 28%가 '상당한 정도' 의 요인?되고 있다고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전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주유소을 습격해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주유소 습격사건' 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더니 실제로 주유소를 습격해 금품을 강탈한 10대 등 4명이 경찰에 검거되고 다른 2명이 수배됐다.

범행동기는 '영화가 멋지게 보여 똑같이 해보려 했다' 는 것이다. 살인 등 끔찍한 범죄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영화들이 판을 치고 있는 판국에 영화를 흉내내는 풍조가 더욱 확산되면 그런 것까지 흉내내려는 범죄자들이 없지 않을 터인즉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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