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동명 '내 마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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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촉(燭)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라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깐 그대의 품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다

- 김동명(金東鳴.1901~68) '내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 . 이것이면 다 끝나버리는 시다. 이 두 행으로 크게 이름을 떨쳐 중년여인의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시이기도 하고 공연히 슬퍼지며 노래가 되어 마을 밖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다채로운 경력인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신학 전공, 세기말 보들레르 탐닉, 은둔, 목재상, 그리고 해방 뒤 흥남자치위원장.조선민주당 함남도당위원장, 월남 이후 이화여대 교수, 그리고 자유당 비판의 정치평론가. 참의원의원, 그리고 그는 죽었다. '내 마음은' 4절의 노랫말로 꾸며졌다. 노랫말 이상은 아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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