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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파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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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소년에겐 거리가 학교였다. 부두 일꾼 아버지를 둔 8남매 중 일곱째. 배곯기 싫으면 밥벌이를 해야 했다. 예닐곱 살부터 땅콩을 팔고 구두를 닦다 공장 노동자가 됐다. 스물넷에 가정을 꾸렸지만 신혼은 얼마 안 갔다. 병든 만삭의 아내가 변변히 치료도 못 받고 숨졌다. 6개월간 문밖 출입을 끊었던 그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가난해도 인간 대접 받는 세상을 꿈꿨다. 노조 활동에 매달리다 노동자당을 만들고 네 번 도전 끝에 대권까지 잡았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얘기다.

브라질은 ‘브릭스(BRICs)’ 일원으로 잘나가는 나라가 됐어도 룰라의 꿈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파벨라(favela)가 그 증거다. ‘브라질판 달동네’라 할 파벨라는 포르투갈 말로 들꽃이란 뜻이다. 대도시 언덕배기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빈민촌이 마치 천지사방 피어나는 들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리우데자네이루만 해도 900개를 훌쩍 넘는 파벨라가 해변가의 호텔과 부촌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리우 사람 셋 중 한 명은 그곳에 산다. 화려한 삼바 카니발에 가려진 이 도시의 슬픈 그림자다.

마약을 파는 거대 범죄 조직들이 이들 파벨라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중화기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수시로 총격전을 벌여 경찰도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 열서너 살만 되면 으레 조직에 들어가 기관총을 잡는 게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이곳 아이들의 유일한 미래다. 리우에서 지난 한 해 살인사건이 4631건이나 벌어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2016년 올림픽 개최지로 리우를 고르며 국제 사회가 내준 숙제가 바로 범죄 소탕이다. 룰라는 “더러운 먼지를 일소하겠다”며 ‘파벨라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얼마 전 첫 소탕전에선 경찰 헬기가 피격되고 20여 명이 죽는 참상이 빚어져 우려만 키웠을 뿐이다.

“(범죄를 없애려면) 파벨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민들은 외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치부를 감추려 들 게 아니라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을 끊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준비 과정에선 15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인 빈민촌에서 쫓겨나 더욱 곤궁해졌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올림픽이 빈곤층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 셈이다. 가난을 아는 룰라의 해법은 어떻게 다를지 자못 궁금하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