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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점수보다 기술 더 소중히 … 세상 기준과 거꾸로 사람 뽑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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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어떻게 하게 됐느나고요? 대기업에 근무할 때인데 아무리 공부해도 토플 점수 미달로 나와 승진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왔지요.”(웃음)

승진을 위한 토플 하한선을 넘지 못해 직장을 그만 둔 20대 후반의 젊은이. 새옹지마인가, 지금은 직원 75명 연매출 129억원의 반도체 장비업체 ‘사장님’이 됐다.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이달(10월)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힌 에프씨산업의 송선근(43·사진) 대표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지만 그땐 창피하고 속상해 밤잠을 못 잤다”며 웃었다. 그는 기술보다 영어 점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기업 풍토에 대한 섭섭함도 은연중 내비쳤다. ‘기능이 모든 것에 근간이다’ ‘거꾸로 경영하라’라는 철학으로 미래산업을 설립한 정문술 회장은 향후 그의 멘토가 됐다.

“가장 밑을 먼저 생각하라는 정 회장의 말씀이 정말 와닿았어요.”

1999년 4월 충남 천안에 5000만원 자본금으로 회사를 차려 10년 만에 적잖은 중소기업으로 키웠다.

직원 16명은 기능올림픽 출신이고 부친에 이어 2대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3명이나 될 정도로 복지 혜택과 근무 분위기가 좋기로 천안 인근에선 유명하다.

“제 개인 회사가 아니라 종업원들의 회사지요.”

송 대표는 설계언어를 기계언어로 전환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전기·전자 합선에서 화학 원료에까지 사업 분야를 넓혀갈 계획이다.

전체 직원 중 30%가 연구원일 정도로 연구개발(R&D)에 힘쓴다. 근래엔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미국 뉴욕·시카고·로스앤젤레스뿐 아니라 중국·일본·대만 등지에 수출한다. 전체 생산량의 65%를 해외로 납품한다. 올해는 중국에 지사를 세웠다.

“사업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홀로서기였어요. 이익을 연구개발에 모두 쏟아 부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금 조달이 원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제때 좋은 제품을 개발하지 못할 경우 가장 답답합니다.”

그는 딸만 셋을 뒀다. 대학 1, 2년생과 초등학생 늦둥이다. 딸들이지만 능력과 적성만 되면 회사 일을 시키고 싶다고 했다. 큰딸은 공부를 잘해 몇 년 전에 서울의 한 외국어고에 합격했지만 보내지 않았다. 대신 캐나다 공업전문학교에 유학 보내 엔지니어로 키웠다. 딸들이 이 방면으로 커서 아버지가 만든 회사를 더욱 키워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는 장차 기능인 양성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꿈도 꾼다.

경기도 안산 빈농의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송 대표는 가난이 싫어서 악착같이 공부했다. 인천기계공고 기계과에 3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 굴지의 전자회사 기능 훈련 특별반에 취직했다. 20세이던 85년에 일본 오사카 28회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조립 부문에서 동상을 받았다. 회사를 나와 한 차례 쓰라린 사업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다시 한미반도체에 취업해 3년쯤 다닐 때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의 생산기술 분야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가 미래산업에서 성과를 많이 내자 정 회장이 “우리 물량을 외주할 테니 회사를 한번 차려보라”고 권유한 것이 오늘의 에프씨산업이 됐다. 

홍승일 기자


이달의 기능 한국인=국내 우수 기능인의 창업 등 성공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기 위해 2006년 8월 정부가 제정한 월례 포상 제도. 한국산업인력공단의 6개 지역 본부와 18개 지사, 노동부 지방관서에 서류를 갖춰 응모하면 된다. 웹사이트(www.hrdkorea.or.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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