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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다] 3. 대책은 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위기관리시스템의 개발.보완은 신임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의 핵심과제다.

정치권과 정치학자들은 옷 로비 축소 의혹.언론 문건 파문같은 민감한 문제일수록 "보좌진이 정보를 독점하려 하고, 신랄한 난상토론을 꺼리는 관료적 문화가 형성돼 있다" 고 지적한다(金炳局 고려대 교수.崔在旭 전 청와대 공보수석).

이를 막기위해선 수석비서관 회의를 격의없는 난상토론장으로 바꾸고, 사안별로 테스크 포스팀(특별대책팀)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당정정책협의회를 내실있게 운영하고, 별도로 직보기관장(정보.사정기관)사이에 적절한 정보교류.협의장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보완책으로 지적됐다.

5공 때 궤도를 이탈한 '관계기관 대책회의' 의 부작용을 의식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형태의 모임를 선별해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관용(朴寬用.한나라당)의원과 문정인(文正仁.정치학)연세대 교수는 "대통령의 통치에 명백하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선 순위를 조정.통제할 컨트롤 타워(사령탑)가 작동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 이라며 "이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국정운영과 별개 문제" 라고 지적했다.

◇ 청와대 참모들의 정보 공유〓함성득(咸成得.대통령학)고려대 교수는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만 종적(縱的)으로 보고하고, 권위주의적인 분위기 속에 횡적인 의사소통이 활발치 않은 것 같다" 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옷 로비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법무비서관이 전적으로 이 문제를 담당한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정책기획.정무.공보수석들과 함께 원탁회의를 수시로 열거나 공동책임 하에 TF팀을 만들어 이슈 관리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단순히 '법과 원칙' 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국민 감정과 직결된 '고감도 통치사안' 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같은 협의체제는 대통령의 귀에 거슬리는 정보 제공이나 대안 제시를 통해 리더십차원의 결단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절실하다는 것.

◇ 대통령 직보(直報)기관간 유기적인 정보 교환 등〓대통령에게 정례적으로 직보하는 기관은 국가정보원.집권당 등이 있고 검찰 조직같은 권력기관도 사실상 여기에 해당한다.

박찬욱(朴贊郁.정치학)서울대 교수는 "비선(秘線)이나 사조직이 아닌 공식 통치조직의 장(長)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필요할 때마다 만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특히 "청와대의 보좌 조직이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므로 국민 여론에 민감한 당이나 정부측이 이를 보완해줘야 한다" 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책 명령자' 에서 '정책 설득자' 로 대통령의 권력행사 스타일이 전환되기를 기대했다. 의회에서 여소야대 상태에 몰려있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중요 법안의 통과를 위해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수시로 전화한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정치개혁을 관철하기 위해선 "클린턴 대통령의 대야 설득 사례가 참고될 것" 이라는 제안이다.

외교.안보.남북문제 처리에 성과를 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같은 조정기구가 통치.여론관리.대야관계 분야에서도 위기관리 수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조기 경보 및 적절한 책임관리〓국정표류 상황이 발생할 때, 위기의 정도를 신속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특히 '통치에 부담을 주는 사건' 에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판단.대책을 보고하는 일들은 '위기의 조기 경보' 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정부 안에서 이해관계자가 관련 사안을 챙기는 방식은 언론파문 때도 마찬가지 부작용을 낳았다는 게 이들 교수의 분석이다.

이같은 문제들은 사안에 따라 국무총리나 여당 대표, 국정원장이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적절히 교통정리하고 필요하면 특정인의 책임론까지 제기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가 조성돼야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그런 구조와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결국 대통령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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