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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 첫승 "28년 걸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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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창단 28년 만에 감격의 첫승을 거둔 뒤 서울대 투수 박진수 선수(左)와 박현우 선수(右)가 탁정근 감독(中)과 함께 기쁨의 포즈를 취했다. [대한야구협회 제공]

199패1무 끝의 1승.

서울대 야구부가 드디어 감격의 첫 승을 올리며 대학야구 만년 꼴찌의 설움을 털었다. 팀 창단 28년 만이고, 201경기 만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통을 이어온 보람을 오늘에야 찾았네요." 승리투수 박진수(체육교육과 4) 선수는 긴 대결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1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2004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 B조 예선리그. 상대는 신생팀인 송원대였다. 올해 창단돼 야구부 25명 전원이 1학년생이지만 모두 고교시절 야구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만만치 않은 팀.

2회 1사 1, 3루 상황에서 용민의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선취점을 뽑은 서울대는 4회 상대의 실책으로 1점을 보태 승기를 잡았다. 그리고 2-0으로 경기가 끝나는 순간 모두 마운드로 몰려나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박진수는 9이닝 동안 155개의 공을 던져 안타 4개를 맞고 볼넷 8개를 허용했지만 끝내 무실점으로 막았다. 팀 역사상 최초의 완봉승 투수가 된 그는 "대학에 들어가 처음 야구공을 잡았다"는 진짜 아마추어. 현재 장교후보생(ROTC)이다. 직구 스피드는 120㎞에 불과하지만 커브의 낙차가 커 에이스로 뛴다. 그는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가 체육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날 3타수 1안타를 기록한 김영태 선수는 법대 4년생. 대회 기간에도 법전을 끼고 사는 공부벌레다. 하지만 지난 7월 열린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두 번의 도루를 성공하면서 서울대 사상 최초로 개인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1977년 창단한 서울대 야구부는 그동안 어느 대회에서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최약체 팀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콜드게임(5회 10점 이상, 7회 7점 이상)으로 지다 보니 '보는 팀이 임자'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1무승부 기록도 지난달 26일 한일장신대와의 경기(4-4)에서 기록한 것.

초등학교 때부터 선수생활을 한 다른 대학팀에 비해 실력이 워낙 처지다 보니 대한야구협회로부터도 냉대를 받았다. 서울대와 붙은 팀의 승패는 인정하지만 타율과 타점.홈런 등 개인기록은 아예 인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설움 속에서도 투지와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지난 2월엔 학교 보조금에 선수들이 자비로 낸 돈을 보태 제주도로 열흘간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탁정근 감독은 "숱한 패배 속에도 할 수 있다며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면서 "남은 경기에서도 다시 한번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적의 첫 승을 올리면서 '아마추어' 서울대 야구부의 역사는 새로 쓰여지고 있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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