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재조사] 검찰 "잠이 안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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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만달러 수수 혐의를 재조사 중인 검찰이 당시 수사 검사들의 소환을 놓고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사건 재조사를 지휘하고 있는 임승관(林承寬)서울지검 1차장검사는 21일 "현재까지 수사 검사의 소환은 참고인 자격으로 이뤄지는 만큼 미리 소환시간을 알리지는 않을 것이며, 조사 내용은 사후에 공개하겠다" 고 밝혔다.

수사 검사들에 대한 공개소환은 해당 검사들의 업무수행은 물론 일선 검사들의 사기저하까지 초래할 수도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설명이다.

林차장은 지난 20일에는 '수사 검사 소환 관련 협조 요청서' 라는 이례적인 자료까지 배포, 소환 여부조차 미리 공개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올해 초 '연판장' 파문을 겪은 검찰이 '사기' 보다 내부의 '반발' 을 우려했다는 해석이 더 우세하다.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을 검찰이 다시 들춰낸다는 모양새가 당시 수사팀은 물론 이 사건과 무관한 일선 검사들로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89년 서경원(徐敬元)전 의원 밀입북 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수사팀 중엔 현재 서울지검에 간부로 재직 중인 '옆방 식구' 들도 있어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공안1부는 소환 모양새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당시 안기부장이던 자민련 박세직(朴世直)의원을 이미 공개소환했던 검찰로서는 '제 식구' 만 감싼다는 비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金대통령에게 1만달러가 전달되지 않았음을 확인,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만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사법처리하고 당시 수사팀은 처벌에서 제외하는 것은 더욱 모양새가 어색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당시 수사팀이 金대통령에게 1만달러가 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당한 정황증거를 고의로 누락했다 하더라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金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전례없는 재조사에 나섰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시 검찰이 무리한 수사로 金대통령을 엮었다고 결론을 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앞에 두고 검찰은 이래저래 고민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재조사에 참여 중인 한 검사는 "잠이 안온다" 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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