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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공사 중단은 나쁜 선례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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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는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에 대해 '환경영향 재평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지율 스님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 중단 여부를 다투고 있는 항고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공사 중단 결정을 내렸다. 시민단체의 반대와 단식농성 때문에 정부가 대형 국책사업의 공사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너무 가벼운 처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속철도 건설은 국민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입돼 벌써 10여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현실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성적 판단으로 공사를 중단시킨 것은 향후 대형 국책사업에서 공사 중단을 불러올 빌미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최근에만 여러 번 있었다.

첫째가 새만금사업을 둘러싼 공사 중단 사태였다. 식량자원 확보와 지역개발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출발한 새만금사업이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시민단체들의 뚜렷한 대안 없는 반대여론에 밀려 공사가 일시 중단돼 하루에만 2억원의 세금을 낭비한 사례가 있다. 사업 자체가 무산되더라도 생태계 복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안 없이 공사를 중단시켜 결국에는 사업 지연에 따른 세금만 낭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둘째는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구리~일산 구간의 공사 중단 사례다. 북한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관련 불교단체의 반대로 공사가 일시 중단돼 많은 세금을 낭비했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우회도로가 더 많은 환경파괴를 불러온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시민단체가 물러선 상태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이 반대만을 일삼은 결과 공사 중단에 따른 막대한 세금 낭비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 정부의 천성산 건설 중단 조치로 향후 국책사업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 사업이 중단되고 세금을 낭비하는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안 없는 공사 중단으로 사업 지연에 따른 세금 낭비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들은 없다. 문제 제기로 대립을 막고 사업 중단에 따른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 단체가 현실적인 사고로 접근해 그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이해당사자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앞서 국익을 생각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또 시민단체는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반대운동을 벌여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정부도 여론에 밀려 감성적으로 정책판단을 할 게 아니라 원칙을 가지고 사업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며 관련 이해집단과 시민단체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가 원칙 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향후 국책사업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는 관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도롱뇽도 좋고, 개구리도 좋고, 습지도 좋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좀더 신속하고 편리한 교통생활을 누리고 싶고, 대안 없는 공사 중단으로 혈세가 낭비되는 것 또한 바라지 않을 것이다.

천성산 구간은 항고심에서 공사 불가 판정이 날 경우 설계 변경과 재공사로 몇조원의 사업비가 더 들어갈 것이며, 노선 변경에 따른 환경파괴는 더 늘어날 것이고, 현재까지 진행된 공사구간의 복원문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점 또한 관련 이해당사자.시민단체.정부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현실적.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여론과 시민단체의 반대에 따라 감성적인 정책판단을 할 경우 향후 많은 국책사업에 영향을 미쳐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고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그 대상이 행정수도 이전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나 지역주민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면 정부는 그때도 수도 이전을 중단할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최현일(열린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