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7. 시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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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 정선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

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 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
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4 식탁
식탁은 찢긴 크래커 봉지와 반쯤 우그러진
콜라 깡통과 입 닦고 던져 놓은 종이 냅킨을
받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과거와 미래를
모르고 가까이 혹은 멀리 있다

아이들아, 별자리 성성하고 꿈자리 숭숭하듯
우리도 세상에 그렇게 있다 하지만 우리를
받아들인 세상에서, 세상이 식탁일 줄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부분, '작가세계' 2003년 가을호 발표>

◆ 이성복 약력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77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아, 입이 없는 것들'
-82년 김수영문학상, 90년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후보작 ''아, 입이 없는 것들'-보유(補遺)' 외 2편

시인 이성복씨는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른 자작시 한 편을 골라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절차를 거쳐 최종심에 올라야 한다면 차라리 후보에서 빠지겠다"는 말도 했다. 할 수 없이 2심 심사에 참여했던 문학평론가 김수이씨에게 작품 해설을 부탁했다.

이씨의 후보작은 지난해 출간한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에 덧붙이는 형식의 연작시 ''아, 입이 없는 것들'-보유(補遺)' 등 세 편이다.

김씨는 "'빠진 것을 채워 보탠다'는 뜻의 '보유'라는 단서를 붙였기 때문에 '보유 연작시'는 '아, 입이 없는 것들'의 연장선상에서 읽어야 하지만 독립적인 성격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마다 일련번호를 붙인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의 맨 마지막 시는 125번이었는데, 이번 연작시 10편은 126번이 아니라 1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연작시 1번 '정선'과 4번 '식탁'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기로 했다.

우선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에 대한 사전 설명이 필요했다.

김씨는 "시집 제목의 '입'은 모든 육체가 가지고 있는 구멍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입은 씹고 삼키고 싶어하는 욕망의 통로이면서 언어의 통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꽃.돌.달 같은 존재들에는 입이 없다. 특히 이씨는 시집에서 꽃을 회음부만 있을 뿐 말하고 욕망을 표현하는 입은 없는 존재로 그렸다. 김씨는 "때문에 입이 없는 존재들은 추하지 않고 아름답지만 욕망으로부터 유리됐다는 사실 때문에 슬픈 존재이고 연민을 자아낸다"고 지적했다.

한편 존재의 육체성에 대한 이씨의 관심은 인간의 육체가 썩고 변해가서 꽃.이파리 등 다른 존재로 이어지는 과정을 주목했다.

김씨는 "'정선'을 그런 사전 이해 없이 읽으면 황당하고 뜬금없을 수 있다. 하지만 육체성도 결국 변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연장시키면 나의 육체가 까마귀나 피리와 섞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식탁'의 크래커 봉지와 콜라 깡통, 종이 냅킨 등은 특정 시간 속의 일시적 존재 형태다. 그것들은 세상이라는 더 큰 입에 먹히고 소화돼 또 다른 육체로 변해간다.

김씨는 "이성복 시의 특장은 현실 사회를 다루든 자기 안의 관념을 다루든, 대상을 세계관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진 언어 미학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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