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발언과 국가 백년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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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를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큰 약속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국민에게 무슨 약속을 할 수 있겠나. 한나라당의 존립의 문제다”고 말했다. 부처 이전 규모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원안을 지키고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며 청와대·정부 측 의중에 정면으로 맞섰다. 친박근혜 의원이 60여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발언의 파장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세종시 정국’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신뢰·약속을 앞세우는 원칙론에 입각한 것으로,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세종시 논란에 불을 댕기기 전이기는 하지만, 7월 몽골을 방문했을 때 “(세종시 건설은) 엄연한 약속인 만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적도 있다.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말하는 ‘신뢰’와 ‘약속’이 우리의 국익, 국가 백년대계와 얼마나 합치되고 조화를 이루는지에 있다. 그의 소신이 일개 정파나 지역을 넘어 나라 전체에 과연 도움되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기에 세종시 문제는 ‘한나라당의 존립’ 정도의 차원을 넘어선, 국가의 긴 장래가 걸린 현안이다.

애초부터 정략의 산물이었던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국정 비효율과 막대한 세금 낭비는 불 보듯 뻔하다. 원안대로 진행하면 국익이 결정적으로 훼손되지만, 그렇다고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없는 게 ‘세종시 딜레마’다. 하루빨리 정략을 벗어나 전 국민은 물론 충청지역에도 이익이 되는 방안을 마련해 논란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안 국회 처리에 동의해준 데 대해 2004년 “한나라당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공개 사과하는 용기를 발휘한 적이 있다. 국익을 위해 정치적 유·불리를 잠시 접고, 개인적 소신을 넘어 대승적인 사태 해결을 도모하는 결단력을 기대한다. 청와대나 정부도 국가 백년대계를 감안한 설득력 있는 해법을 속히 강구해 정치권과 일반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