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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으로 이어간 '나란 존재' 찾기-윤대녕 '코카콜라 애인'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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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설가 윤대녕(37)씨가 새 장편 '코카콜라 애인' (세계사)을 펴냈다. 서사적 재미 보다는 시적 이미지가 충만한 윤대녕문학의 미덕은 장편보다는 중.단편에서 단연 빛을 발해온 터. "등단 10년째면 이제 장편을 잘 쓸 때도 되었다" 는 작가의 말마따나, 네번째 장편인 이번 작품으로 그가 장편에도 걸맞는 문학적 발돋움을 해냈지가가 관심거리다.

'코카콜라 애인' 의 주인공은 시나리오.방송대본 등을 쓰면서 살아가는 미혼의 서른살 청년 '나' . '나' 는 마약과 혼음으로 얽힌 '코카콜라 클럽' 사람들의 삶에 뜻하지 않게 휘말려든다.

자해성 교통사고를 저지른 뒤 병원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PD, '나' 를 이 사건의 한패쯤으로 여기는 형사의 추적, 우연히 마주친 '코카콜라 클럽' 의 마담 오미향, PD의 오피스텔 컴퓨터에 남겨진 메모를 토대로 '코카콜라 클럽' 의 정체를 짐작하고 사라진 PD의 뒤를 쫓는 '나' . 이렇게 추려낸 뼈대는 추리소설과 닮아있지만, 작가는 합리적 실마리를 차근히 제공하는 추리소설과 달리 소설 속의 현실을 점점 더 안개 속으로 몰아넣는다.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상징 역시 현실" 이라는 모토 아래 음악.영화 등 문화적 기호를 소설 가득 채워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정도는 덜하지만 카페 벽에 걸린 포스터나 배경에 흘러나온 음악을 시시콜콜 거명하고, 소설의 무대 역시 마포의 오피스텔이나 카페 따위 공간을 실명 그대로 옮겨온다.

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사실에 대한 과잉 정보는 오히려 비현실적 느낌을 상승시키고, 이는 자기 존재의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의심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느닷없이 흐려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해도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로서의 연속성을 띠게 마련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되뇌이지만, 정말 그럴까. 주인공과 만나는 또다른 여성 '장진화' 는 아예 이번일이 있기 2년 전 파주 가는 길에 벌어진 교통사고 때문에 '나' 가 시간의 단절을 체험했을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이 쫓는 것은 사라진 PD가 아니라 '나란 존재' 다. 윤대녕문학의 지속적인 주제, '존재의 길찾기' 가 다시 한 번 변주되는 셈이다.

머물러 있는 삶을 못견뎌하면서 노상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작품들을 써내곤 했던 작가는 이번 장편을 다듬는 지난 반 년 동안은 일산의 집 주위 만을 맴돌았다고 했다.

이 변화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작가는 "윤대녕 소설에서는 똥냄새가 안난다고 하더라" 면서 그 간 이미지 위주의 작품 구성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듯, 한결 구체적인 서사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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