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시림 추락 10대 '지옥의 14일' 버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아마존 정글 한복판에 떨어진 베네수엘라 소녀가 풀뿌리와 나무열매로 연명하면서 14일을 버텨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 소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부상으로 신음하는 다른 승객을 세심히 돌본 끝에 함께 구출됨으로써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올해 11세인 노리스 빌라레알이 베네수엘라 남동부 도시 푸에르토 아야쿠초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자신의 집이 있는 산후안 마나피아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것은 지난달 12일. 구름을 내려다보'며 초등학교 6학년에 진급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될 기쁨에 부풀어 있'던 노리스는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7명의 승객들에게 소지품을 모두 창 밖으로 버리라고 지시하는 조종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리스는 무거운 짐들은 모두 내던졌지만 약간의 빵과 햄, 그리고 성경이 들어있는 작은 배낭 하나는 꼭 움켜쥐고 있었다.

노리스는 곧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강 위에 비상착륙하려던 비행기가 커다란 나무에 부딪치면서 정글 한 가운데로 떨어졌던 것이다.

노리스가 눈을 떴을 때 비행기 조종사를 포함해 5명은 이미 숨져 있었다. 노리스는 먼저 한쪽 다리가 절단돼 신음하고 있는 승객 카를로스 아르테아가에게 다가가 빵과 물을 주고 다리를 붕대로 감아주었다.

"힘을 내세요, 곧 구조의 손길이 도착할 거예요. " 비행기 잔해와 시체들이 널려있는 사고현장에서 밤을 새운 노리스는 다음날부터 유일하게 거동할 수 있는 또다른 생존자 이스마엘 로드리게스(19)와 함께 인근에 원주민이 있는지를 찾아다녔다.

갖고 있던 빵과 햄은 금방 떨어졌다. 이들은 풀과 나무 열매를 따먹고 흐르는 개울물을 마시며 정글을 헤매다녔다. 모기와 독충들에게 수백군데가 물려 팔다리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로드리게스는 머리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독충들에게 물어뜯겼다. 노리스는 다친 발목의 통증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민가를 찾아 걷고 또 걸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몸이 흠뻑 젖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야생동물들 때문에 불안에 떨었다.

혼자 남은 부상자 때문에 '마음놓고' 멀리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아마존 정글에 고립된 지 14일째. 노리스와 이스마엘은 사고 지점에서 1.5㎞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비행기가 머리 위로 낮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4시간 뒤 구조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 노리스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들것에 실려 6백여㎞ 떨어진 카라카스시로 옮겨진 2명의 용감한 10대에게 베네수엘라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카라카스 시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노리스에게 훈장을 증정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한 노리스는 TV인터뷰에서 '퇴원하면 카라카스 시내를 구경하고 싶다' 고 천진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홍주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