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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 지상 백일장 수상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해조음

아득한 꿈길 열어 쉬엄쉬엄 걸어왔다

꽃가마 둘러메는 흰구름도 덩달아 웃는

나직한 옷고름선에 시집가는 햇덩이

청어빛 바다 바람이 암벽에 부딪치며

맹수의 울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

해조음 날 선 빛빛이 그물망에 걸려온다

파도에 채를 써는 하얀 달빛 그리움을

뱃전에 부딪혀서 포말을 일구어 낸다

추억의 그림자 조차 물밑으로 비늘 깔며

나를 지축삼아 세상이 돌아갈 때

수평선 감아올린 팽팽한 줄끝에서

태양을 과녁 삼아서 활시위를 당긴다

김병환 <울산광역시 남구 야음3동 712-6 야음주공아파트 29동103호>

호박 넝쿨을 보면

무덤처럼 시린 가슴 팽그르르 젖이 돌고

오소소 이는 소름 까실한 살빛 푸르도록

단단한 슬픔의 독기

자꾸만 웃자라는가

눈물방울 새겨 넣는 외길은 또 휘돌고

누워, 지쳐 누워 그렇게 뒤척이는데

언제나 나를 찾는 덩굴손

또, 허공에 떨고 있다.

살아있는 목숨으로 지상에서 흔들릴 때

꺼칠한 바람속 견딜 길 없어도

모정의 순을 틔우며

야위는 어.머.니

선안영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금호아파트 105동1008호>

친정집 소묘

오랜만에 다섯 자매 다 모인 친정집에

어머니는 쉴새없이 싱글벙글 웃으시네

툇마루 잠자던 먼지 눈비비며 일어나고.

양은솥 멸치국물에 뜬 수제비 자맥질하고

옛얘기 양념되어 구수한 내음 피워대면

어머니 혼자 드시던 소반도 같이 들썩들썩.

잦아드는 정담 속으로 하품이 몰려들고

어머니 코고는 소리 베개삼아 잠이 들면

방문 위 낡은 사진틀로 돌아가는 이야기들.

심석정 <울산광역시 중구 복산2동 성지아파트 101동9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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