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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뽀샵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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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여자들이 예뻐지는 데 목숨 건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로마 시대부터 유럽 여인들은 티없이 하얀 피부로 보이고자 납의 일종인 백연(白鉛)을 덕지덕지 펴 발랐다. 그러다 독이 올라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고 심지어 죽는 이들이 숱하게 나왔어도 어처구니없는 유행은 2000년 이상 계속됐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만 해도 그로 인해 얼굴이 망가져 궁궐 안의 거울을 모두 없애버릴 만큼 좌절했지만 죽는 날까지 백연 가루 화장을 고집했다고 한다.

동서고금에 걸쳐 이른바 ‘모래시계’ 몸매를 만들려다 명을 재촉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비자』엔 중국 초나라 때 가는 허리를 좋아하는 군주의 맘에 들려 애쓰다 굶어 죽는 이가 속출했단 기록이 나온다. 19세기 유럽에선 허리를 코르셋으로 너무 세게 졸라맨 나머지 갈비뼈가 내장을 꿰뚫어 죽는 일이 빈발하기도 했다(샤오춘레이,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이처럼 도가 지나친 여자들의 외모 집착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초창기 인류의 짝짓기 메커니즘에서 이유를 찾는다. 종족 번식이 최대 과제였던 당시엔 아이 잘 낳는 여성을 선호했던 게 당연지사. 그런데 윤기 있는 피부, 맑고 빛나는 눈,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등 매력적인 외모가 임신과 출산 능력의 보증수표로 통했다는 거다. 이렇듯 얼굴과 몸매로 자기 가치를 평가받다 보니 아득한 옛날부터 여자들이 치장에 물불을 안 가리게 됐다는 얘기다.

현대 여성들의 노력도 태곳적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달라진 건 아름다움의 기준이 자손 생산 능력과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뿐. 날씬하다 못해 빼빼 마른 연예인들을 따라잡기 위해 멀쩡한 처자들이 필사적으로 다이어트에 매달린다. 그 후유증으로 거식증에 시달리다 생리마저 끊어진 12~25세 여성이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에 달한다. 거식증은 환자 중 5~10%가 10년 내에 사망할 만큼 무서운 병이다.

최근 유럽 각국에서 포토샵 규제 법률을 잇따라 추진 중인 것도 그 때문이다. 담배나 술에 경고 글을 붙이듯 “이 사진은 ‘뽀샵질’ 했으니 속지 마시오”란 문구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포토샵으로 보정한 화보, 광고 속 모델들의 비현실적 몸매가 젊은 여성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걸 막자는 취지다. 성형과 다이어트 열풍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시행돼야 할 법은 아닐는지.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