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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열풍' 서산간척지에도 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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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현대그룹의 영욕이 서린 충남 서산 간척지 3100만평 중 10분의 1 이상이 도시 외지인의 손에 넘어갔다.

서산시와 현대건설에 따르면 농지법 개정으로 지난해 1월부터 도시민도 주말농장용으로 약 300평(1000㎡) 이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된 뒤 서산간척지 A.B지구 3100만평 중 360만여평이 도시민 등 외지인에게 팔렸다. 1인당 평균 300평씩 매입한 것으로 볼 때 소유주만 1만2000여명에 이른다.

서산간척지 농지를 분양하는 영농조합(농지원부를 소유한 농민 5명 이상이 모여 결성하는 법인체)은 10여곳. 조합은 농민을 대신해 땅을 팔고, 농민은 땅을 산 도시민을 대신해 농사를 지어준다. 도시민에게 분양 중인 땅은 3100만평 중 2050만평이다. 현대건설이 자금난을 겪던 2000년, 자구계획의 하나로 일반 농민에게 판 970만평과 피해어민 보상 용도로 분양한 1080만평이다. 일반 농민은 평당 2만~2만6000원, 피해 어민은 1만7000~2만3500원에 이 땅을 샀으나 대출금 부담 때문에 외지인에게 팔고 있다. 분양가는 처음 평당 4만3000원이었으나 분양이 잘돼 4만9000원대로 올랐다.

수도 이전 기대감으로 충청권 땅값이 올랐고, 서산간척지도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라는 소식이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실제 현대건설 목장 인근과 도로와 100m 이내인 곳, 간월도 인근 지역 등이 개발 기대감으로 선호도가 크다. 서해안영농조합 전승근 대표는 "투자금이 1000만원대로 적어 소액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며 "1년에 쌀 120kg(약 25만~26만원 상당)과 텃밭.유실수를 덤으로 주는 것도 호응을 얻는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분양 호조로 현대건설도 득을 보고 있다. 대출금 상환에 시달리던 농민으로부터 땅값을 받는 게 쉬워져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올 초 분양한 피해어민용 농지(2200억원)의 경우 3년 거치 10년 분납조건인데도 일부는 도시민에게 땅을 팔아 바로 분양대금을 내고 있다"며 "일반 농민에게 판 땅(2300억원)도 납부율이 높아져 미납액이 60억원 선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분양 과정에서 간혹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일부 조합이 농지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풀지 못해 매수자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지 못하는 바람에 문을 닫기도 했다. 땅 구획이 안 돼 공유지분으로 소유권 이전이 된다는 점도 개운치 않다. 분양회사는 나중에 파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환금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양 당시 내걸었던 각종 혜택이 얼마나 지켜질지도 미지수다. 현대서산AB지구 영농조합 관계자는 "1개 조합이 위탁영농을 할 농지가 60만평(2000명) 이상은 돼야 수익이 생긴다"며 "그 이하면 채산성이 안 맞아 1년에 쌀 120kg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산시가 지난달 25일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앞으로 땅을 팔 때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내야 한다. 농민에게 소유권이 넘어온 지 1년이 안 된 땅이 대부분이어서 양도차익의 60%가 세금으로 날아간다.

서산시 관계자는 "서산 농지가 땅 투기의 온상이 되는 듯해 주시하고 있다"며 "도시민이라도 1년에 30일 이상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농지법을 어겨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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