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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교육현장] 2. 초등학교 교사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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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생님, 우리 학교 교사로 꼭 와주세요. " 서울 H초등학교 교장.교감은 물론 교사들도 지난 한주 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지낸 끝에 교과전담 교사 한 명을 초빙했다. 담임교사 중 한 명이 집안 사정을 이유로 휴직계를 내자 서울지역 명예퇴직 교사 명단에 실린 전직 교사들 가운데 다시 교단에 설 사람을 찾아나선 것이다.

지난해 정년 단축과 무더기 명예퇴직으로 초등교사 부족현상이 발생하자 교육부는 기간제 교과전담 교사로 충원시켰지만 지금 초등학교에서는 '교사 부족현상' 이 여전하다.

올해 초등학교의 경우 정년 단축으로 5천1백35명, 명예퇴직으로 1만7백55명 등 모두 1만5천8백90명의 교사가 교단을 떠났다.

교육부는 뒤늦게 신규 교사 7천8백9명.기간제 교사 6천7백80명을 선발하면서 "학급 수 감소 등의 요인이 있어 교사 부족현상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의 교사 부족현상은 심각하다. 사정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나빠지고 있다.

경기도 양주군 H초등학교 미술.체육담당 교사(26)는 경리담당까지 겸하고 있다. 교사 봉급날이던 지난 17일. 오전에 수업을 모두 마치고 농협에 가 교육청이 학교 통장으로 송금한 돈을 찾아 다시 교사들의 개인통장으로 송금하는 일을 했다.

그는 "서무직원이 없어 경리 업무까지 하다 보니 수업은 뒷전으로 밀려날 때가 적지 않다" 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올들어 전국 벽.오지 초등교사 80여명이 격무 부담 때문에 사표를 던지고 대도시 지역 교육청의 초등교사 임용시험에 응시하면서 교육 공백 상태가 곳곳에서 빚어졌다.

대구.경북.전남.강원 지역에서는 교사 부족 때문에 중등자격증 소지자를 일정기간 연수 후 초등학교 담임으로 채용키로 하자 예비 초등교사들인 전국 교육대생들이 "초등교육을 망치고 있다" 며 반발, 수업거부를 벌이고 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당장 교사가 부족한 곳엔 기간제 교과전담 교사를 곧바로 투입하고 있어 문제는 없으며, 특히 내년엔 신규 임용 교사 숫자를 늘려 교사 부족현상을 해소해 나가겠다" 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충원 교사의 질 문제와 함께 교단의 반목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체육전담 교사(중등 체육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초등 담임을 맡아 수학을 가르치는가 하면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명예퇴직 교사가 교사 부족 때문에 미술 교과전담 교사로 다시 학교로 되돌아가 미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경기도 일산시 성라초등학교 허장(許樟)교장은 "교과전담 교사와 정규 교사들이 쉽게 융화할 수 없는 요인이 많아 걱정" 이라고 말했다. 또 명예퇴직자들이 교사 부족현상 때문에 무더기로 교단에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도 심하다.

실제로 교직 경력이 29년째인 초등 교감들은 10월분 봉급으로 1백4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경력의 명예퇴직자 출신 교과전담 교사는 봉급 90만원 외에 매달 연금 1백40만원, 명예퇴직금(1억여원)의 이자 등 현직에 남아 있을 때보다 더 이득을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 D초등학교 교감(55)은 "노년 교사를 내보내고 젊은 교사를 충원한다는 교육부의 계획이 치밀한 인원 수급계획 없이 이뤄져 초등학교에 교사 부족사태 등 엉뚱한 부작용을 낳았다" 고 비판했다.

정작 문제는 내년이다. 2000년 8월까지 명예퇴직을 하면 65세 정년을 인정해 명퇴금을 주도록 한 연령(37년 8월 31일~42년 8월 31일 이전 출생자)에 해당하는 초등교사 6천여명 중 상당수가 명예퇴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6천1백여명을 내년에 또다시 뽑는다는 '땜질 처방' 만 준비 중이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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