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아닌 고아들의 '즐거운 어린이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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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버지가 방에 가둬놓고 나가버려 어둠의 공포에 떨던 철호(9).

일자리를 잃고 집을 나간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문정(6.여).

부모로부터 버려져 오갈 데 없는 고아 아닌 고아들이 함께 부대끼며 사는 곳이 있다. 인천시 부평2동에 있는 '즐거운 어린이집' (원장 홍현송).

지난 93년 10월 문을 연 어린이집 식구는 개원 당시 남녀 16명이었으나 현재 45명으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초등생(15명).미취학 어린이(14명)가 가장 많고 나머지는 중학교(9명).고교부(6명).특수학교(1명)에 각각 다니고 있다.

이들은 2개 층으로 나눠진 15칸의 방에서 생활한다. 방 한 칸마다 3~4명씩 들어간다. 방은 현대식으로 꾸며져 깨끗하고 여느 가정집 못지 않다. 그런 이들이 밝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의 손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역 여성 자원봉사자 5명이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7년째 아이들을 돌봐온 '최고참' 曺우량(24)씨는 아직 미혼이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엄마' 로 불린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曺씨는 고교 3년 때 어린이집에 왔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볼 보모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천릿길을 내달려왔다. 그러나 그녀 혼자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다 97년 미망인 吳옥자(41)씨가 주방 일을 돕겠다고 나서자 큰 힘이 됐다.

또 지난 3월에는 미혼인 朴정례(31)씨와 주부 崔명숙(37).金숙희(31)씨가 잇따라 합류하자 어린이집은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역할은 밥짓고 빨래하고 미취학 아이들을 돌보는 일.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이들을 친어머니 이상으로 따르고 있다.

曺씨는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기에 더욱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우리의 역할" 이라고 말했다.

이따금 복지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목욕봉사 등을 하고 간다. 지난 7월 어린이집 수리 당시 장판.벽지.선풍기.에어컨 등을 내놓은 독지가도 있었다. 87년 결성된 구제선교단 '사랑밭회' 의 후원금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曺씨는 "받는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이 받은 만큼 남에게 배 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준다면 더 이상 바람이 없겠다" 며 활짝 웃었다. 032-518-2080.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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