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자발찌 차고 학교 배회, 제재 못해”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일명 ‘조두순 사건’이 한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진 지 거의 한 달이 됐다. 강간치상 전과가 있는 50대 남성 조두순은 지난해 말 등굣길의 여덟 살 난 여자 어린이를 무참히 성폭행해 생식기 등에 영구적 장애를 입혔다. 그가 죄의 대가로 받게 된 형벌은 12년간의 징역과 7년간의 전자발찌 부착, 그리고 5년간의 신상 공개다. “짐승보다 못한 범인에게 너무 가벼운 형벌”이라며 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와 정치권까지 여론에 동조했다.

2006년 용산 초등생 성추행 살해 사건이나 2008년 혜진·예슬양 살해 사건 등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이런 공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고 무뎌졌다. 여야와 정부는 여러 대책들을 쏟아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 사이 아동 성폭행 사건은 꾸준히 늘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3세 미만 성폭행 피해자는 2005년 738명에서 2006년 980명, 2007년 1081명, 2008년 1220명으로 증가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돼야 하는 것일까.

전국 162명 24시간 위치 추적
지난 15일 오후 서울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에 있는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 마중 나온 담당 계장이 지문인식 방식으로 굳게 닫힌 유리문을 열어주자 의외로 평범한 사무실이 나온다. 하지만 사무실 한쪽, 평범치 않은 또 하나의 유리문이 기자의 눈길을 끈다. 역시 특수 보안장치가 달린,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불투명 유리문―. 바로 그 너머에선 현재 전자발찌를 부착한 전국 162명의 위치 정보가 24시간 추적되고 있었다. 13세 미만 성폭력범 7명을 포함해 대부분 상습적인 성폭력 전과자들이다.

중앙 스크린의 대형 지도에는 작은 녹색 원으로 표시된 이들의 동선이 평균 3분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며 깜빡인다. 그중 하나가 갑자기 노란색, 이어 빨간색으로 변한다. 3인 1조로 이루어진 관제팀 중 한 명이 재빨리 자신 앞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누구의 문제인지 확인한다. 전국 54개 지역보호관찰소에서 담당 보호관찰관을 급히 호출해 대상자의 위치 확인을 요청한다. 몇 분 후 다행히 별문제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전자발찌의 위치는 부착자가 함께 갖고 다니는 휴대용 단말기 모양의 추적 장치를 통해 관제센터에 알려지도록 돼 있는데, 이 휴대장치가 부착자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의 위치에 놓이거나 배터리가 방전될 경우 센터에 자동적으로 경보가 울리는 것이다. 하루 평균 7건 정도 이런 일이 생긴다. 물론 전자발찌를 떼어내는 등 장비를 훼손해도 경보가 울린다(관제실 내부는 극소수 관계자 외엔 출입금지 지역이다. 관제실 스케치는 관제팀의 설명을 듣고 재구성한 것이다).

홍정원 중앙관제센터장은 “전자발찌 부착자들은 대부분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재범 방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관련법이 시행된 후 지금까지 전자발찌를 찼던 총 498명 가운데 전자발찌를 부착한 채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한 건뿐이었다. 그때도 위치추적 정보 덕분에 사건 20시간 만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홍 센터장은 “그러나 학교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출입금지나 접근금지 명령 등이 함께 부과된 경우는 드물어서 예방 조치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조두순도 그런 특별준수 사항을 부과 받지 않았기 때문에 12년 뒤 출소하면 전자발찌를 차긴 하겠지만 초등학교나 피해자 집 근처를 아무리 배회하더라도 경고하거나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전자발찌 부착 기간을 연장(최대 10년→15년)하고 부착자는 의무적으로 보호관찰을 받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인터넷 신상공개 확대키로
전자발찌제는 그동안 쏟아져 나왔던 성폭력 대책들 중엔 가장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2005년 4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정치권에선 처음으로 전자발찌제를 공식 제기했을 때만 해도 여러 시민단체로부터 인권침해라는 강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2006년 2월 용산 사건 발생 후 여론이 도입 찬성 쪽으로 기울었다. 미온적이던 정부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7년 4월 ‘특정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 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데 이어 2008년 혜진·예슬양 사건이 터진 후엔 개정안을 통해 시행이 2개월 앞당겨졌다. 인권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등의 목적으로 가볍고 작은 최신 성능의 장비를 개발하는 데만 80억여원이 들었다.

신상공개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2004, 2005년 당시 국무총리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주소와 사진까지 공개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제기했을 땐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2006년 용산 사건 후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2007년 8월에 관련 법안이 개정됐다. 올 6월엔 내년부터 인터넷으로도 열람이 가능하게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개정안이 공표됐다.

낮은 신고율,기소율도 높여야
사실 대책들 대부분은 사건의 여파가 잦아들면 흐지부지 되거나 관련 예산 부족 등으로 도입이 늦춰졌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윤상 소장은 “아동 성폭력 사건은 다른 범죄에 비해 훨씬 낮은 신고율(6% 남짓으로 추정)과 기소율 등을 개선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들이 더 필요하다”며 “하지만 일반 국민에겐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앞서다 보니 정부나 정치권의 대책들도 이에 편승해 처벌 강화 위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두순 사건과 관련해서도 양형 기준을 올리는 데 지나치게 관심이 집중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성계가 이번에 반드시 개선하려는 것은 현행 양형 기준의 이른바 ‘주취 감경’ 조항이다. ‘피고인이 술에 취해 심신장애 상태였다’는 점을 형량 감경 요인으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마침 조두순의 형량이 이 기준에 따라 무기징역이 아닌 12년 형으로 줄었다는 점에 대한 비난 여론은 자발적인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검찰 측도 “살인죄에 대한 재판에는 주취 감경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 반면, 성범죄에서는 세 건 중 한 번 꼴로 주취 감경이 적용되고 있는 건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9일 범죄자의 음주 상태를 형량에 반영하는 기준에 대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이윤상 소장은 “법이나 제도도 바꿔야겠지만 성폭력범에 일반적으로 관대한 사회적 통념 등을 함께 바꿔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newslady@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