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의 알파우먼 겨냥,새 명품 트렌드 만들어...루이뷔통 따라잡을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6호 24면

김성주 회장은 “지금 명품 소비의 중심은 아시아”라며 "정보기술과 접목하면 한국에서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머리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 짧게 잘랐다”는 독특한 헤어 스타일과 훤칠한 키(1m76㎝),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고 외치는 거침없는 자기 주장. 김성주(53) 성주그룹 회장 하면 떠오르는 ‘트레이드 마크’다. 20년째 사업을 해온 그는 ‘김성주’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김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명품 브랜드 MCM 매장은 온통 ‘MCM’으로 도배돼 있다. 캐나다에서 공수해 온 먹는샘물에도, 일회용 종이컵에도 MCM 로고가 반듯하게 찍혀 있다. 이 회사가 얼마나 브랜드 경영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3일 오후 중앙SUNDAY와 만난 김 회장은 “자체 평가한 결과 MCM 브랜드 가치는 3500억∼4000억원”이라며 “조만간 1조원짜리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MCM 브랜드의 글로벌 사업과 막스앤스펜서 브랜드의 국내 유통 사업을 하는 성주그룹은 올해 2400억원대 매출을 전망하고 있다. 그는 5~6년 내 매출 1조원 달성을 자신했다.

CEO가 꼽은 CEO, 위기 경영의 지혜를 듣는다 ⑪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브랜드에 왜 그렇게 열정을 쏟나.
“부즈앨런&해밀턴이 한국 경제를 가리켜 ‘고기술’의 일본, ‘저가격’의 중국에 밀려 넛크래커(호두 깨는 기구)에 끼인 상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게 10여 년 전인데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졌다. 조만간 미국·유럽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다. 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되는 무서운 시대가 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은 기술과 브랜드뿐이다. 5~7년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브랜드 경영에 눈뜬 것은 언제인가.
“1990년대 초 한국에서 구찌·이브생로랑·막스앤스펜서 같은 명품 브랜드를 들여와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원가가 같은 5만원인데도 어떤 제품은 10만원 받기도 힘들다. 그러나 구찌 브랜드만 붙이면 100만원 가격표를 붙여도 수긍을 한다. 94년 구찌가 증시에 상장할 때 매출이 3000억원대였다. 그런데 브랜드 가치는 4조원이란 평가를 받았다. 지금 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는 81억 달러(약 9조4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서 브랜드의 힘을 봤다.”

김 회장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2005년 3월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을 인수하면서부터. 76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견고하고 실용적인 여행 가방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MCM은 90년대 중반만 해도 3억50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경영 부실로 스위스 투자회사로 넘어가면서 사세가 크게 위축됐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김 회장은 한국 매출을 계속 늘려나가 MCM 매출의 3분의 2를 올리는 경영 능력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스위스 투자회사와 담판을 벌여 MCM의 글로벌 사업권을 확보하게 됐다. MCM은 지난달 미국의 명품 백화점인 ‘삭스 피프 애비뉴’의 뉴욕 본점을 비롯한 전국 15개 점포에 입점하는 개가를 올렸다. 김 회장은 “지난 4년간 혁명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결과”라고 말했다.

-MCM 인수 후 어떤 일을 했나.
“일단 ‘대청소’가 필요했다. 인수 당시 MCM은 세계 130여 나라에 진출해 있었는데 2006년까지 모두 문을 닫았다. 명품 이미지 재구축을 위해 수천만 달러의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그다음 아디다스에서 근무하던 미카엘 미칼스키를 디자인 총괄로 영입했다. 스포츠 브랜드 출신에게 명품 디자인을 맡기는 파격을 시도했다. 내부 정비가 끝나면서 2007년부터 다시 공격적으로 매장을 개설했다.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다.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아시아 등 40여 국가에 300여 판매망을 확보했다. 마케팅 방법도 달리했다. ‘명품은 비싸야 잘 팔린다’는 통념을 깼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전문직 여성을 겨냥한 것이다. 21세기형 새 럭셔리 소비층인 이들을 우리는 ‘리얼 우먼’이라고 부르는데, MCM의 주요한 타깃이다.”

-MCM의 삭스 피프 애비뉴 입점 성적은 어떤가.
“아주 성공적이다. 전시품 판매율이 20%를 넘어 재주문에 들어간 제품이 많다. 입점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브랜드가 됐다. 온라인 매장 판매율은 35%로 더 높다.”

-온라인 시장도 적극 공략하는 것 같다.
“현재 매출 중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량 된다. 앞으로 수년 내 그 비중이 40%로 커질 것이다. 20년쯤 지나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출이 역전될 것이다.”

-삭스 피프 애비뉴에 입점 당시 향후 5~7년 내 루이뷔통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했다.
“루이뷔통 매출의 60~70%가 아시아인에 의해 일어난다. 다른 명품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인의 정서에 맞는 명품을 만드는 데 자신 있다. 서양 속담에 ‘별을 따겠다고 하면 산꼭대기는 간다’는 말이 있다. 분명히 성과가 있을 것이다.”

김 회장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으로는 모자란다”며 자신의 일과를 소개했다. “영국 런던에서 근무할 경우 새벽 1시에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게 된다. 오전 10시쯤이면 유럽 각국 매장이 문을 열면서 전화가 밀려든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릴라치면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해가 지지 않는 회사’를 경영하는 셈이다.”

-CEO가 권한 위임을 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나.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력도, 경험도 부족하다. 대신 우리는 치열함으로 승부한다. 그런 만큼 CEO가 먼저 뛰어야 한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런던·뉴욕·도쿄 사무소 책임자가 모두 ‘한국인 워킹맘’이다. 이게 너무 자랑스럽다. 명품 브랜드 CEO가 바쁜 또 다른 이유는 업(業)의 특성 때문이다. 패션은 디테일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너무 변화무쌍해서 수시로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펑크가 난다. 구찌 브랜드를 살려낸 도미니크 데졸레 회장도, ‘패션사관학교장’으로 불렸던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의 마빈 트라우브 회장도 끊임없이 현장을 누볐다. 리더가 현장을 모르면 회사가 죽는다. 칭기즈칸도 부하와 함께 말을 달리고, 진흙탕에 텐트를 쳤으며 얼음 같은 빵을 나눠 먹었다. 그렇게 해서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사업을 해오면서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
“외환위기 때가 가장 힘들었다. 수입업을 하는데 원화 가치가 급락하다 보니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구찌 본사에 한국 사업권을 팔아 280억원을 확보한 덕에 위기를 넘겼다. 구찌 브랜드의 한국 매출을 세계 5위 규모로 키워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위기는 개인적인 것이다.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 8개월 된 딸이 화상 사고를 당했다. 온몸의 4분의 1에 3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살아났다. 딸은 미국에서 내가 다녔던 애머스트대에 다니고 있다.”

-기업을 공개할 계획은 없나.
“앞으로 5∼6년 안에 증시에 상장할 생각이다. 돈을 벌면 사회공헌 활동, 특히 북한 여성과 아이를 돕는 데 쓰고 싶다. 딸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조언을 해줄 수 있겠지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김 회장은 미국 유학을 떠날 때, 결혼을 할 때 집안의 심한 반대를 이겨내야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기 이름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웃으면서) 사업을 시작할 때 아버지도 그런 질문을 하시더라. 그래서 ‘외국에선 자기 이름으로 사업하는 경우가 흔하다. 내 꼬리표를 달고 자존심 있게 사업을 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대성집 딸’로 불렸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중에게 내 이름을 기억하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임종할 때쯤 아버지께서 ‘사업가의 피는 너에게 다 물려준 것 같다’고 하시더라. 너무 감사했다.”

-내년이면 사업을 시작한 지 만 20년이 된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나.
“아직은 아니다. 다만 바빠진 것은 맞다. 박세리를 보면서 한국의 많은 소녀들이 골프를 배웠고, 김연아를 보면서 피겨 스케이팅에 도전하고 있다. 나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한다. 한국 여성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싶다. 내 꿈은 한국을 글로벌 패션 축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되는 게 가능할까.
“세계 패션의 중심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옮겨온 게 24년 전 일이다. 이제는 아시아가 그 중심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명품의 3분의 2를 아시아인이 구입한다. 그래서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아시아 기업들이 속속 인수하고 있다. 명품 가방으로 유명한 영국의 멀버리는 싱가포르의 클럽21이, 프랑스 랑방은 대만 왕패밀리가 인수했다. 이것이 트렌드다. 아시아에 본거지를 둔 MCM은 수시로 아시아인이 원하는 신제품을 낼 수 있다. 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의 정보기술(IT)을 패션에 접목하면 놀라운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성주그룹의 성공 스토리가 미 하버드대 교재에 실린다고 들었다.
“올 초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글로벌 강소기업 11개를 선정해 성공 사례를 교재로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인터뷰를 했다. 내년 6월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기업인으로서 성공했는데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나.
“전혀 없다. 2005년 세계여성지도자대회를 유치한 적이 있는데 정계에 입문하기 위한 것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는 천성이 글로벌 야생마다. 정치에 가둬두기엔 옷이 맞지 않는다. 오로지 기업인으로서 봉사할 것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유독 강조한다.
“이제 글로벌 경쟁력은 제조업이 아니라 지식 기반의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여기에 여성이 딱 맞는다.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를 더한 것이 바로 여성지수(WQ·Woman Quotient) 아닌가.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인터뷰할 분을 소개해 달라.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이다. 싱가포르 등에 세계적인 명품 건물을 지은 분이다. 또 복마전이라는 건설 시장에서 투명 경영으로 유명한 분이다. 우리와 코드가 맞는다.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변함 없는 임직원의 신뢰를 받고 있기도 하다.”


1956년 대구생. 고 김수근(1916∼2001) 대성그룹 명예회장과 대한기독교절제회장을 지낸 고 여귀옥(1926∼2006) 여사 사이에서 3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이화여고와 연세대 신학과를 나와 미국 애머스트대 사회학과,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글로벌 기업인으로 변신한 지금은 ‘칭기즈킴’으로 불리지만 초등학교 때 별명은 ‘잔다르크’. 서울 사직동에 있던 시립아동병원을 찾아 학용품을 나눠주는 등 남모르게 봉사활동을 해 붙은 것이다.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결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입사했는데 여기서 구박도, 차별도, 무시도 많이 당했단다. 이게 결국 피와 뼈와 살이 돼 패션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90년 고 김 회장에게 3억원을 빌려 ㈜성주를 세우면서 사업가로 나서 오늘날의 성주그룹을 일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