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경계할 '정보중독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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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래 창피한 일이 있으면 얼른 수습하고 같은 일로 두번 창피를 안당해야 정상이고, 그것이 온당한 방법이다.

창피한 일이 있는데도 아니라고 우기고 변명하다 보면 작은 창피가 큰 창피가 되고 끝내는 수습이 더 어려워지기 쉽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감청문제는 정말 보기가 딱할 지경이다. 분명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는 게 확실한데 왜 좀더 빨리, 일찌감치 수습하지 못하고 이렇게 확대하고 복잡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총장이 비화기(秘話機:이런 기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를 쓰고, 전경련이 회의를 하기 전에 도청장치가 없는지를 용의주도하게 검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 의 심각성은 십분 드러난다.

게다가 수사기관이 유령예산을 끌어다 감청장비를 구입했다느니, 국가정보원 8국의 3백명이 24시간 국내외 전화를 감청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도대체 검찰총장이 어떤 자리며, 전경련이 어떤 곳인가. 바로 이 나라 체제의 상징이요, 핵심이다. 그들이 도청.감청을 겁낸다니 해외토픽이 될 일 아닌가. 그들마저 그 지경이라면 야당.언론.기업.사회단체는 오죽할 것인가.

지난해에도 이 문제로 말썽이 커지자 정부는 "안심하고 통화하세요" 라는 신문광고를 크게 내더니 올해도 똑같은 광고를 냈다. 그러나 안심하고 통화할 수 없다는 의혹이 더 커지고 있으니 광고비만 날린 셈이다.

도청.감청은 단순히 국민의 통신비밀이 침해된다는 식으로 떠들다 말 일이 아니다. 민주사회의 본질이 걸린 문제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안.불신으로 내몰고, 사람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며 이중적 언행(言行)을 하게 만들고,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등등의 온갖 해악(害惡)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누가 나를 도청한다면 그 이유가 뭘까.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는 나를 잠재적 적대자(敵對者)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청을 통해 내 약점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뭘까. 나는 화가 나고, 불안해지고, 나 역시 그를 불신하고 나아가 경멸.증오하게 될 것이다.

통화를 하다 잡음이 들리면 "어떤 ×××가 도청하고 있어" 하고 극도의 모멸감.증오감을 보이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도청을 하는 '그' 와 당하는 '나' 를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집단이나 기관으로 대체해보자. '그' 가 정부고 '나' 가 야당 또는 언론.기업이라면 여야협력.언론자유.기업활동이 과연 정상적으로 되겠는가.

'그' 가 권력기관이고 '나' 가 힘없는 기업이나 공직자라면 '나' 는 속으로는 경멸하고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웃고 아부하게 되니 '나' 는 이중인격자.위선자가 되는 게 아닌가.

만일 '그' 가 '나' 와 경쟁적인 기업이라면 '그' 와 '나' 사이에 무슨 건전경쟁이나 협력이 가능하겠는가. 또 '그' 가 도청으로 '나' 의 어떤 약점을 잡아 언제 어떻게 치고 나올지 모른다면 '나' 로선 위축되고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사회에 무슨 예측가능성인들 있겠는가.

도청을 피하기 위해 전화 한번으로 될 일을 직접 만나거나 사람을 보내야 하니 전체 사회적 낭비도 엄청나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도청을 하는 심리상태라면 첩자를 박고 밀고자를 포섭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주변인물을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야 할 것인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도청이 몰고 오는 해악은 이처럼 무섭다. 필자로선 단정할 입장이 아니지만 정말 권력.수사기관이 광범위한 도.감청을 하고 있다면 그건 곧 정권이 그만큼 피해의식에 빠져 있고 초조하고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도청.감청과 같은 방법이 정치적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국가를 유지하자면 간첩.밀수.마약.조직범죄… 등을 막기 위한 감청은 필수적이다. 누구도 그런 감청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의 도.감청은 결코 안될 일이다. 그것은 가장 비겁하고 저열(低劣)한 짓이다. 도청은 좀 하지만 다른 건 모두 민주적으로 한다□ 도청은 좀 해도 인권은 존중한다□ 이런 변명은 통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 하나로 민주주의는 깨지는 것이다.

원래 정보에도 중독성이 있다. 늘 정보에 접하다가 끊어지면 막막하고 방향을 잡기 어렵고 못견뎌 하게 된다. 그것이 정보의 함정이다. 하물며 도청에 의한 첩보 따위에 중독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정부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빨리,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송진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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