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 8강] 조선진, 黑대마 잡고 4강 합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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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일본의 본인방 조선진(29)9단이 중국의 신예강호 왕레이(王磊.22)8단을 격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조9단은 백을 쥐고 왕레이의 대마를 잡아 156수만에 불계승했다.

그러나 김승준(26)6단은 일본의 야마다 기미오(山田規三生.27)7단의 강력 수비에 가로막혀 비세에 몰린 가운데 종반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제4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선수권대회 8강전 2일째 대국은 7일 오전 9시30분 인천 올림포스호텔에서 속개됐다.

이날 출전한 4명은 모두 20대. 전력은 매우 엇비슷하여 팽팽한 장기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막상 대국이 시작되자 세계최고를 꿈꾸는 이들의 날카로운 예기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바둑은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투바둑으로 이어졌고 결국 조선진9단과 왕레이8단의 대결에서는 바둑판의 절반이 전멸하는 참극이 빗어졌다.

◇ 조선진9단-왕레이8단 전〓조9단은 실리적인 기풍이었지만 최근 실(實)과 세(勢)의 균형감각이 갖춰지면서 급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왕레이8단의 기풍은 중국 표현으론 '야력(野力)' .한국식 잡초류가 휘어질듯 끈질긴 식물적인 생명력을 말한 것이라면 그의 야력은 좀더 파괴적인 동물적인 생명력을 말하고 있다. 2회대회 때 왕레이의 완강한 힘에 조치훈9단이 제물이 됐었다.

왕레이의 흑번. 대국이 시작되자 왕레이는 예상과 달리 귀를 파고들며 실리를 선점하는 작전으로 나왔고 조9단은 두터움을 견지하며 집으로도 일정한 거리에서 추격하는 양면작전으로 맞섰다.

중반전에 접어들었을 때만 해도 국면은 소강상태로 전쟁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집이 약간 부족하다고 느낀 왕레이8단이 돌연 대마의 사활을 도외시한채 실리를 챙긴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온건한 기풍의 조9단은 이순간 태도를 일변하여 대마를 일직선으로 잡으러갔고 이후 70여수의 공방전 끝에 끝내 대마를 전멸시켰다.

◇ 김승준6단-야마다 기미오7단 전〓바둑계의 미공자로 불리는 김6단은 겉보기와 달리 97년 2회 삼성화재배에서도 4강까지 올랐던 강펀치의 소유자. 집차지보다는 두텁게 모양을 펼친 뒤 강한 완력으로 상대의 목을 조르는데 능하다. 야마다7단은 유시훈7단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신예강호. 2년전 유7단의 왕좌 타이틀을 뺏어간 일이 있다. 실리적인 기풍으로 타개에 강하다.

흑을 쥔 김6단은 대국이 시작되자 득의의 변형 중국식 포진으로 하변에 대모양을 펼쳤고 야마다7단은 즉각 뛰어들어 예상대로 공격과 타개라는 전형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김6단은 백의 진로를 통렬하게 가로막으며 널리 포위망을 쳐 일단 기선을 잡았지만 공격받기를 즐기는 야마다는 벼랑 끝에서도 역습을 터뜨리며 활로를 열었다.

그는 16강전에서도 이런 식의 처절한 저항과 타개로 공격의 대가 유창혁9단을 꺾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스타일의 타개에 성공했다. 백의 우세속에서 바둑은 종반전. 총상금 6억2천만원, 우승상금 2억원의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은 28일 서울서 열릴 예정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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