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구조조정의 적기 출구전략은 미국 따라 하면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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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인준(61·사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처럼 ‘학자’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제학자도 드물다. 환갑이 넘도록 40여 년간 현실과 이론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강단을 지켰다. 선물학회·금융학회에 이어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금융발전심의위원회 민간위원장, 무역위원회 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한국투자공사 운영위원장 등도 지냈다. 거시와 국제금융 전문가이면서도 시장만능주의나 반시장주의 어디에도 경도되지 않은 정통 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얼마 전 『대한민국, 경제학에게 길을 묻다』(중앙북스)라는 책을 펴냈다. 학자와 학생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으론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경제학자로서의 책임감과 한국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관악산의 가을풍경이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대 사회과학관 6층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최근 V자형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낙관할 때는 아니다. 완만한 U자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경제가 이미 2년 이상 침체를 겪었다. 회복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W자나 더블 딥 얘기가 많은데 U자형과 별 차이가 없다. U자형의 바닥이 한번 출렁이면 더블 딥이 된다.”

-한국 경제는 실제로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 않나.

“두 가지 착시요인이 있다. 원화가치와 달러 캐리다. 미국의 제로금리 덕분에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들어와 외환시장을 안정시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진 원화가치는 수출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런 요인들이 사라지면 회복세가 지속될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회복 분위기에 휩쓸려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사실 구조조정의 적기다. 경기가 급락할 때는 구조조정이 어렵다. 실업 증가와 소비 악화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면 위기 이후 경제가 두고두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 타이밍이 중요한데 정작 구조조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구조조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채권금융회사가 주도하도록 해서는 한계가 있다. 자기 부실을 드러내는 일을 기꺼이 하기 어렵다. 외환위기 당시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된다.”

-부실기업 솎아내기 이상의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 G20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글로벌 불균형 해소다. 미국이 과소비를 줄이면 한국·중국 등이 수출 위주로 경제를 성장시키기 힘들어진다.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내수, 특히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서비스산업 생산성이 제조업의 90%인 데 비해 한국은 3분의 2 수준이다. 뒤떨어진 만큼 빨리 키울 수 있다. 교육은 몰라도 의료와 금융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출구전략은 언제 해야 할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미국을 따라 하면 된다. 국제공조라는 명분을 내걸고 그때까지는 저금리 여건을 십분 활용하면 된다.”

-책에서 부동산 거품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거품이 다시 끼면 언젠가 경착륙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요즘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고령화되는 인구구조와 지나친 자산거품 등 거시경제 상황이 많이 닮아있다. 대놓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은행도 통화정책에 자산가격 변동을 반영해야 한다.”

글=나현철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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