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노벨상, 조바심치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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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노벨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풍토에 대해 필자는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매년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누가 어느 분야에서 받게 됐는지 살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광섬유 및 전하결합소자(CCD)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들이 ‘정보통신 세계의 기초를 세운 공로’로 수상하게 됐다.

원래 과학 분야 노벨상, 즉 노벨 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은 기초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이 받는 것으로서, 실용적인 발명을 한 사람이나 공학·기술 분야의 공로자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다만 무선전신의 발명으로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르코니 등이 기초과학보다는 기술적 발명에 가까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만약 뛰어난 발명가나 공학기술자에게도 일반적으로 노벨상이 주어졌다면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노벨상을 몇 개쯤 받았어야 마땅할 것이다. 에디슨이 송전사업 분야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와 공동으로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될 뻔했다는 소문이 있을 뿐이다.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을 낳게 한 CCD는 디지털카메라의 핵심 부품으로서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1921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인슈타인의 주요 업적인 광전 효과의 규명과도 큰 관련이 있다. 아인슈타인 하면 다들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게 되므로, 노벨상 역시 상대성 이론으로 받았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상대성 이론과 같은 혁명적인 물리학 이론은 확실하게 검증하기도 쉽지 않아서 노벨상 수상자 선정위원회를 포함한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을 납득시키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로 꼽히는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 역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대중적 명성에 비해 그의 구체적 업적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하는 전문가들도 있겠지만, 그가 우주론 및 입자물리 이론 분야에서 최고의 두뇌라는 데에는 별로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노벨 과학상, 특히 물리학상은 정보통신(IT) 혁명 및 과학기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변화에도 부합해서인지, 기초과학뿐 아니라 중요한 기술적 업적을 이룩한 사람에게도 간혹 수여되는 추세를 보인다. 전기공학 석사 출신의 잭 킬비는 반도체 집적회로(IC)의 발명으로 컴퓨터와 전자공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200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 또한 노트북과 MP3용 하드디스크 기술과 관련이 있는 ‘거대 자기저항’의 규명이 주요 업적이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 전기공학 전공의 가오 박사 역시 광통신의 핵심기술인 광섬유 개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 일본인이 많았던 지난해와 2002년에는 언론마다 ‘우리는 왜 못 받나?’ 하는 물음과 질타가 쏟아지곤 하였는데, 올해는 과학 분야 수상자 9명 중 8명이 미국 시민권자인 탓인지 좀 잠잠한 듯하다. 노벨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의연하게 기초과학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