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佛 입양아 감독, 한국에 "미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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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부산의 한 극장. 영화가 끝났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관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까지 들어왔다. 더이상 앉을 곳이 없자 관객들은 뒷자리로 가 섰다. 아직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곳곳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잠시후, 한 동양인 여성이 무대 위로 향했다. 여성의 첫 마디는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였다.

여성의 이름은 우니 르콩트, 그녀는 자신의 첫 작품이자 한국과 프랑스의 합작인 영화 '여행자'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이날은 영화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무대에 오른 것이다. 사실, '여행자'에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영화 '해운대'와 '실미도'를 통해 천만 배우로 우뚝 선 설경구를 비롯해 '괴물'을 통해 기대되는 신예로 떠오른 고아성, 연기파 배우 문성근까지.. 여기에 '밀양'으로 칸에 입성한 이창동 감독도 가세했다. 단 연출이 아닌 제작자로 참여했다. 이들 중 한 명도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르콩트 감독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9살의 진희가 프랑스로 입양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 '여행자'는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녀는 9살에 프랑스로 입양돼 그곳에서 자랐다. 입양에 대한 상처나 분노를 다룬 것이 아닐까 했던 처음의 예상은 어긋났다. 르콩트 감독은 진희를 통해 버려짐이 아닌 이별의 아픔을 인정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소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저는 영화를 통해서 이별의 힘든 점, 고통, 이별을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나가야 되는 그런 이유, 존재의 이유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소녀의 이름을 '진희'로 정해놨다. 진실을 뜻하는 '진'자와 여자 아이에게 많이 붙여지는 '희'자를 합쳐 진실을 찾고자 하는 시도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입양'이라는 자전적인 소재가 다소 부담되지 않냐는 질문에 르콩트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당시부터 모든 것을 인정하고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제가 처음에 진희라는 아이, 나와 너무나 닮아 있는 이야기를 쓸 때는 이런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전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자전적이라는 부분을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뭐 거리끼는 것은 없습니다.”

르콩트 감독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버린 나라? 혹시 조금이라도 앙금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물어봤다.

"제가 태어난 곳이고 저의 생부모님이 계신 곳이고, 또 한편으로는 저의 유년시절의 한 부분이죠. 의식하고 있든 무의식적이든 한국은 저의 한 부분입니다."

몇해 전, 르콩트 감독은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를 만났다. 친아버지는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관객으로나마 자신의 영화를 보길 바란다고 한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 먼저 소개된데다 부산에 이어 도쿄영화제 초청까지, 르콩트 감독은 갈 길이 멀다. 도쿄를 다녀온 뒤에는 브라질, 캐나다, 인도에서 열리는 영화 축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녀는 많은 나라에 초청된 것보다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영화에 국적을 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영화는 항상 소통할 수 있는 언어고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관객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게 된 점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의 이별의 아픔과 그 이별을 극복해나가는 9살 진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여행자'는 오는 29일 국내에 정식 개봉한다.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 영화 '여행자'와 우니 르콩트 감독의 인터뷰는 아래 동영상 또는 TV중앙일보에서 만날 수 있다.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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