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3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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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제12장 새로운 행상 ⑪

옌지에서 사향 판매는 김승욱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구입해온 사향 다섯 개 중에 하나만 가짜였고, 나머지는 모두 진품이었다. 옌지에 있는 한약상을 통한 판매가 그처럼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사향이 우황청심원을 제조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약제였기 때문이었다.

사향이 들어가지 않은 우황청심원은 모두 가짜로 분류되었다.

하나가 진품이 아니었는데도 이천달러 정도의 이득이 생겨났다.

베이징까지 나가는 위험부담을 겪지 않고도 판매는 손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막상 달러를 손에 쥔 순간, 태호는 전율을 느꼈다.

사색이 되어 만류하고 드는 승희 때문에 갈등을 느꼈었지만, 포시에트에서 만났던 밀매상과의 거래를 중단할 수 없었다.

이번 행보에는 옌지의 시스창(西市場)에서 제품으로 생산되는 가죽제품과 전자시계를 사가기로 하였다.

가죽제품은 등산용 조끼와 가죽신과 바지와 윗도리였다. 사향을 거래했던 상인이 요구했었던 상품이기도 했다. 태호는 이번 행보에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것처럼 자본금을 달달 긁어 상품을 사들였다. 승희는 수수방관이었고, 손씨는 김승욱과 같이 시스창을 열불나게 들락거렸다.

그리고 나흘 뒤 그들은 또 다시 포시에트로 출발했다. 이번엔 승희만 남고 태호와 김승욱 그리고 손씨가 동행하였다. 조선족 마을에서 하룻밤을 체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출발이기도 했다.

보따리는 모두 다섯 개였다. 한국의 속초항과 포시에트 사이에 정기여객선 항로가 개설된다는 소식은 조선족 마을에서도 일찌감치 알고 있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막연한 기대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겉으로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항로가 개설되면 얻는 이득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도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러다가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날 한국을 다녀왔었던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어왔다는 사실에 호기심과 미련을 갖고 있었고, 한국으로 가기가 지난날처럼 손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배가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지긋지긋한 농사를 팽개치고 장사로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태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잠행 루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항로 개설이 흐지부지될 것 같으면, 그들의 도움이 지금처럼 한결같지 않으리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후환을 없애려면, 인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흥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행로를 드나들 때마다 일정액을 그들에게 지불하기로 약속한 것은 오히려 헤프게 지출해온 부대경비를 절약해 주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태호와 김승욱은 포시에트로 떠나고 손씨는 마을에 남았다.

그러나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불안이 그토록 심각하리란 것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잠행로 초입까지 동행했던 마을 청년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고 난 뒤, 하루가 지났다.

그들은 이튿날 오후에 마을로 돌아오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다시 잠행로 초입으로 가서 돌아오는 그들을 맞이하기로 되어있었던 청년들이 허행을 하고 돌아온 시각은 그날 밤 9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그러나 불길한 징조만은 아니었다. 돌아올 날을 이틀쯤 연기하겠다는 소식을 돌아오는 다른 밀매상들로부터 통기를 해왔었다.

그러나 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민한 상황들이 그 말을 믿고 기다릴 처지는 아니었다. 밀매상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불길한 생각만 들어 옌지에 있는 승희와 통화하려 하였으나 그 또한 손쉬운 일은 아니었다.

손씨가 보기엔 마을 사람들의 반응도 갑자기 냉담해진 것 같았다. 그 자신은 한시간 보내기에도 애간장을 끓이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었고, 줄곧 하얗게 질려 있는 그를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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