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탈세 고발] 해외거래 리베이트 관행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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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중훈(趙重勳)한진그룹 명예회장 일가에 대한 검찰고발 및 탈루세액 추징은 한진그룹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정도의 결과여서 재계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았던 항공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에 전격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들도 해외거래를 통해 조성한 리베이트가 세무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의 리베이트는 항공기 가격을 싸게 계약하고 차액을 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국세청 조사결과 대한항공은 이런 리베이트 수수를 통해 모두 5천억원(4억4천2백만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조세회피지역에 이전시켜 둔 것으로 드러났다.

◇ 관행적 외화유출 제동〓국세청은 "아무리 관행이라지만 이제는 2001년 외환거래의 완전 자유화를 앞두고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와 재산 해외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져 대한항공을 '표본정밀조사' 했다" 고 밝혔다.

특히 한진그룹은 조세회피지역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서류상으로만 회사 요건을 갖춘 특수목적회사(SPC)인 해외현지법인 KA사(가명)를 세워놓고 리베이트를 받아 국내로 반입한 뒤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 주력기업들까지 적자에 허덕이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결손금이 발생해 흑자가 나도 전년도로부터 넘어온 이월결손금과 상쇄돼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형평성 시비〓국세청은 한진 조사를 '표본정밀조사' 라고 강조 했다. 한진 입장에서 보면 국세청이 스스로 '표적조사' 를 했다고 자인하는 대목이다.

항공기 도입과정에서 리베이트가 발생하고 항공업체 특성상 해외현지법인이 많은 만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도 똑같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세청은 "아시아나도 이런 세무비리가 있는지 예단할 수 없고 조사계획도 현재로선 없다" 고 밝혔다.

특히 형평성 시비를 낳는 것은 한진그룹의 이같은 세무비리가 멀게는 91년부터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기세무조사 등을 통해 이같은 불법 관행을 바로잡아줬다면 5천억원에 달하는 메가톤급 세액추징을 당해 기업활동에 치명타를 주지않아도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재벌의 부자 3명을 한꺼번에 검찰에 고발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함께 취한 것은 '족벌경영 해체' 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모양만 낸 데 대한 '괘씸죄' 또는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재벌 혼내주기의 '시범케이스' 로 삼으려 했다는 지적도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이번 일로 재벌에 관행화돼온 세무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전달돼 재계에 투명경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일이 좋은 계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혹시라도 표적조사 시비가 나오지 않도록 세무조사 대상의 선정과 체계를 투명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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