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Amrikanli(미국적인)

중앙일보

입력

Amrikanli(미국적인)
Sonallah Ibrahim, Cairo, Dar Al-Mustaqbal
Al-Arabi, 484쪽, 20 이집트 파운드(약 4000원)

“신뢰할 수 없는 정부로부터 상을 받을 수는 없다.”

남루한 차림의 한 노작가가 부인의 손을 잡고 시상식장을 빠져나왔다. 지난해 10월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거행된 아랍 소설가 위원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소설가’시상식에서 발생한 ‘반란’이었다. 상을 주려던 이집트 문화부장관은 당황해 어쩔줄 몰라했고,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 등 귀빈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시상식에 참석한 문인과 관중은 단상에서 내려오는 소날라 이브라힘(67)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그의 이름을 외쳐댔다.
‘진보와 거부의 작가’로 알려진 이집트 작가 이브라힘이 10분 연설을 마치자 뜨거운 존경을 표했다. “부패한 정부가 내게 상을 주겠다는 것은 나와 내 작품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그는 감히 상상을 뛰어 넘는 반정부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수십년간 지속되는 계엄 속에서 강압정치를 행하는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고 반정부 언론들은 다음 날 대서 특필했다.

이브라힘에게 2003년 올해의 아랍 소설가라는 ‘공허한’ 명예를 가져다 준 작품은 역사소설 『아므리칸리』다. ‘미국적인’이라는 뜻의 이 소설의 제목 아래에는 같은 발음이 나는 아랍어 문장이 부제로 달려있다. 괄호안에 표시된 부제 ‘아므리 칸 리’는 ‘나의 일은 내 소관이다’라는 의미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이미 제목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좌파적 성향의 이브라힘은 이 자전적 역사소설에서 “미국적인 시각이 판을 쳐도 그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책임이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미국 UC 버클리에서 1년간 방문교수로 지내며 겪은 경험을 소재로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역사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펼친다. 소설은 강의차 미국을 방문중인 이집트 역사학자가 학생들을 통해 듣는 다양한 세계관과 미국관, 그리고 이집트관을 대화체로 전개한다. 여기에 학자가 목격한 미국 사회의 명과 암을 소개하고 이 현실을 이집트가 처한 현상황에 이입하는 기법이 동원된다.

이집트 학자와 학생들 간의 대화는 여러 주제를 다룬다. ‘사베크’라는 미국 원주민은 초기 유럽 정착민들이 어떻게 인디언들을 살상하면서 나라를 세웠는지를 설명한다. 작가는 우루과이의 한 언론인이 평하는 남미와 미국간 착취의 관계도 자세히 소개한다. 그러나 작가는 학생들과 기타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는 미국이 어떻게 아랍정치에 관여하는지에 집중한다. 결국 이 소설은 이집트와 중동이 처한 현 상황이 유럽과 미국의 패권주의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문제의 해결은 한 가지 정책이나 단편적인 사상운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다. 이브라힘은 궁극적으로 역사적인 측면에서 중동인들의 시각 교정이 필요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제3세계의 ‘지식인들의 위기(intellectual crisis)’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올바른 세계관이 정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강대국 미국에 휘둘리는 아랍 정권들, 그리고 그 정권에 아첨하는 지식인들이 대중의 의식을 끌어가는 한 중동의 부흥은 어렵다는 얘기다.

이 같은 그의 사상적·실천적 거부운동은 중동의 많은 독자로부터 ‘저항의 또 다른 차원을 열어가는 작가’라는 존경을 받고 있다.

1937년생인 이브라힘은 카이로대학에서 법과 드라마를 전공했다. 졸업 후 기자생활을 하던 중 나세르 정권에 의해 59년에 좌파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돼 6년간 투옥됐었다. 이후 10여년 동안 베를린과 모스크바에서 언론인 생활을 한 뒤 74년 귀국해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샤라프(명예)’‘커미티(위원회)’등이 있고 이 중 몇 권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해외에 소개됐다.

카이로=서정민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